[판례로 보는 세상] ​보이스피싱, 미필적 고의 인정에 신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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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택 변호사(법무법인 법승)
입력 2018-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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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도1239 판결 평석

1,서설

’보이스피싱‘이란 유인책에 속하는 공범들이 국내에 있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금융감독원·검찰 등을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기망함으로써 돈을 송금하게 하여 피해액을 편취하는 신종 사기범죄를 말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총책, 한국어에 능통한 유인책, 계좌/카드보유자인 모집책, 편취금 인출과 관련된 인출책, 편취금을 송금하
는 전달책 등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을 계획하고 이익을 취득하는 총책, 유인책 등은 중국과 같은 해외에 소재하여 그 적발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실제로 검거되어 주범들의 몫까지 처벌받는 사람들은 이득액이 없거나 소액에 불과한 모집책, 인출책, 전달책 등이다. 이들은 형사처벌 이외에도 피해자들이 신청한 ’형사배상명령‘에 의해 편취액 전액을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위 모집책, 인출책, 전달책 등에 대해 어떠한 경우 처벌하고 있을까?

아래 대법원의 대상판결은 통장 모집책에 해당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기방조 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기준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제시함으로서 구체적인 판결을 내렸다.

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① 피고인 갑은 중국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속칭 대포통장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 달라는 연락을 받고, 피고인 을에게 한국인의 대포통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피고인 을은 피고인 병에게, 피고인 병은 이ㅇㅇ, 김ㅇㅇ, 이ㅇㅇ에게 순차적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 결과 이ㅇㅇ, 김ㅇㅇ, 이ㅇㅇ, 피고인 병 명의의 예금통장 등 30개가 발급되어, 피고인 병, 을, 갑 순으로 순차 양도되었으며, 피고인 갑은 피고인 을로부터 받은 예금통장 등을 중국에 있는 사람이 일러주는 대로 신원을 알 수 없는 중국인에게 전달하였다.

② 피고인들이 거래한 예금통장 등은 그 무렵 전화를 이용한 금융사기범죄에 그대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들이 송금한 금원을 인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③ 피고인들 사이에 예금통장 등 양도에 대한 대가로 통장당 30만 원 내지 50만 원의 금원이 수수되었다. 특히 전달된 예금통장 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금통장에 대해서만 대가가 지급되었다.

④ 피고인 갑은 피고인 을에게 자신과 피고인 을 사이에 연락을 취할 휴대폰과 피고인 을과 피고인 병 사이에 연락을 취할 휴대폰을 건네주기도 하였다.

⑤ 피고인 병은 이ㅇㅇ, 이ㅇㅇ, 김ㅇㅇ에게 통장 개설시 신청서나 예금통장에 연락처를 남기지 말고, 통장 매도 확인전화가 오면 매도하지 않았다고 답하라는 주의를 주기도 하였다.

⑥ 피고인 병은 피고인 을로부터, 피고인 을은 피고인 갑으로부터 예금통장은 단 한 번만 사용되니 그 후로는 사용정지를 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⑦ 피고인들은 예금통장과 현금카드 외에도 예금통장 명의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전해 주었다.

⑧ 이에 피고인 갑, 을, 병은 검찰에 의해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되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가.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이 범행을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행위를 말하므로, 방조범은 정범의 실행을 방조한다는 이른바 방조의 고의와 정범의 행위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 점에 대한 정범의 고의가 있어야 하나, 이와 같은 고의는 내심적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이 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할 것이며, 또한 방조범에 있어서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족하다(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3도6056호 판결).

나. 이와 같은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양수도하는 예금통장 등이 범죄행위에 사용되리라는 점을 인식하거나 예견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점조직 형태로 행해지는 전화금융사기의 범행형태를 감안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양도한 예금통장 등이 결과적으로 전화금융사기범죄에 이용되어 사기방조의 죄책을 지게 된다면, 양도한 예금통장 등이 사용된 모든 전화금융사기범죄에 대해 방조의 죄책을 질 수밖에 없고 논리적으로는 무한대의 전화금융사기범죄 또는 피고인들이 사기방조죄로 처벌된 후에 행해진 전화금융사기범죄에 대해서도 다시 사기방조의 죄책을 부담하게 되므로, 사기방조의 인정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에 피고인들은 예금통장 등이 해외에서 송금되는 금원을 인출하거나 돈세탁을 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점, 피고인들 모두 전화금융사기범행의 정범들이나 피고인들이 거래한 예금통장 등으로 금원을 인출한 웨ㅇㅇㅇㅇㅇ, 왕ㅇㅇㅇ, 양ㅇㅇ을 모르고 있는 점, 피고인 을이 사기방조에 대한 자기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피고인 갑의 검거에 협조한 점, 예금통장 등이 전화금융사기에 사용되는 줄 알았으면 본인 명의의 예금통장은 건네주지 않았을 것임에도 피고인 병은 본인 명의의 통장까지 발급받아 피고인 을에게 양도한 점 등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다른 사정에 비추어, 사기방조 범행에 대한 사실의 연결상태가 합리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이 미필적으로라도 인식 또는 예견한 범위는 대포통장의 거래 또는 사용 자체에 대한 위법사실이거나 추상적인 범죄성립의 막연한 가능성에 그치고 이를 넘어 정범에 의해 실현되는 전화금융사기범행에 대해서까지 이른다고 보기 어렵다(무죄).

4. 대상판결의 의의

사법부는 ’보이스피싱‘범죄에 있어 모집책, 인출책, 전달책 등을 ’사기‘ 또는 ’사기방조‘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점, 즉 ’보이스피싱‘에 대한 고의가 있느냐를 주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대상판결은 ① 피고인들이 양도한 예금통장 등이 결과적으로 전화금융사기범죄에 이용되어 사기방조의 죄책을 지게 된다면, 양도한 예금통장 등이 사용된 모든 전화금융사기범죄에 대해 방조의 죄책을 질 수밖에 없고 논리적으로는 무한대의 전화금융사기범죄 또는 피고인들이 사기방조죄로 처벌된 후에 행해진 전화금융사기범죄에 대해서도 다시 사기방조의 죄책을 부담하게 된다는 점, ② 피고인 을이 사기방조에 대한 자기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피고인 갑의 검거에 협조한 점, 예금통장 등이 전화금융사기에 사용되는 줄 알았으면 본인 명의의 예금통장은 건네주지 않았을 것임에도 피고인 병은 본인 명의의 통장까지 발급받아 피고인 을에게 양도한 점 등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다른 사정에 비추어, 사기방조 범행에 대한 사실의 연결상태가 합리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부정하였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이면‘을 살펴보면 모집책, 인출책, 전달책 중 대부분은 유인책 등에 의해 기망당하여 사건에 연루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보이스피싱 범죄‘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비추어 봤을 때 대상판결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피고인들은 본인들이 모집한 통장이 불법적인 ’도박자금‘에 이용될 줄 알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 바, 비록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것이라는 점은 몰랐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5. 결어

검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는 수년 전부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그 위험성과 수법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또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총책, 접근매체 모집책, 전달책, 현금인출책, 송금책 등의 점조직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그 중 인출 및 송금책의 범행방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음’이라며 ‘보이스피싱’범죄의 피고인들에게 고의가 있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과 같이 보통의 일반인들이 ‘보이스피싱의 모집책 또는 인출책/전달책’의 존재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사실 금융감독원, 경찰청 등 국가기관의 근절대책/홍보내용은 모두 ‘돈을 입금하는 최종피해자의 억제’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모집책, 인출관리책, 인출책, 전달책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이러한 용어를 들어보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세부역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피고인에 대한 (미필적)고의 인정에 있어 더욱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사진=법무법인 법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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