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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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사장
입력 2018-11-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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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통 스트롱맨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김광현 사장님[김광현 사장님]


미국 공화당의 최고 보수지식인으로 꼽힌다는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정글이 돌아온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의 국제정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의 정원사(국지적 문제들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해온 미국이 손을 놓아버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지난 70년간 미국 덕분에 평화로웠던 세계가 잡초와 넝쿨이 자라는 정글의 질서로 돌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이렇게 변한 것은 그동안의 미국 역할을 통해 세계가 누렸던 평화, 민주주의 발전, 경제발전 등의 혜택들보다 이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문제에 미국이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케이건은 주장했다. 미국 주류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고, 미국 대통령들의 ‘무덤’이라는 최근 중간선거에서  나름대로 선전한 것도 이런 미국의 분위기 변화가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케이건의 진단처럼 국제질서는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여차하면 강펀치를 주고받을 것처럼 서로 으르릉대고 있다.  오가는 말들은 냉전 때보다도 더 험악하다. 중국은 2050년까지 미국을 제치겠다며 패권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은 중국을 사실상 ‘적국’으로 취급하며 미·중 무역전쟁을 선언, 그 강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세계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만 달라진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나 시진핑 같은 이른바 ‘스트롱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푸틴, 아베, 김정은, 필리핀의 두테르테  등도 모두 스트롱맨들이다. 장기독재가 가능해진 시진핑과 푸틴에겐 이미 ‘황제’와 ‘현대판 차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지난 6월 터키 대선에선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최장 2033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에르도안에겐  오스만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술탄에 빗대어 ‘21세기 술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브라질,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에서도 국수적 극우정당 내지 극우정치인들이 최근 크게 약진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보아왔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인들이 아니다. 선동과 막말, 포퓰리즘, 자국우선 민족주의, 신권위주의 등이 장기인 ‘이상한' 정치인들이다. 말이 좋아 '스트롱'이지 일종의 깡패 같은 정치인들이기도 하다. 경제 악화, 정치적 혼란, 이민자 급증 등을 틈타 이런 강력하고 터프한 인물들이 계속 집권에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인물들이 자꾸 더 득세한다면 제2의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안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뉴스위크지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지도자가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지난 수십년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자유민주주의가 더는 대세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얼마전 파리평화포럼에선 '트럼프의 고립주의와 일방주의가 전쟁 망령을 불러오고 있다'고 세계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경고하기도 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오늘날 상황이 세계 2차대전 직전인 1930년대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우려했다. 양차 대전의 주원인이었던 국수적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만연을 지적한 말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를 지배했던, 강대국이 약소국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지킬 힘이 없으면 빼앗길 수밖에 없는 정글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의 한반도 주변정세는 19세기 말 조선이 망해가던 그때와  많은 점에서 닮았다.  한반도는 그전 천여년 동안 주로 중국에 의탁해 살아왔다. 하지만 19세기 말 중국이 쇠락하면서부터는 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이 마구 달려든 땅이었다.  끝없는 파당정치와 세계 흐름과는 동떨어진 쇄국정책, 탐관오리들의 부패 등으로 왕비(민비) 한 사람 경호할 힘도 없었던 조선은 결국 손 하나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다.
그때처럼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세계 4대 강국이 또다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으르릉거리고 있다. 다시 힘을 회복한 중국은 ‘사드 사태’ 때 볼 수 있었듯 여차하면 보복과 협박이다. 지난 70여년간 남한체제의 최대후원국이었던 미국은 이제 주한미군 철수론까지 입에 올리고 있다. 미국도 옛날의 미국이 아니다. 어느 한쪽 편을 들다간 곧바로 엄청난 보복을 당할 판이다. 일본과는 전쟁배상 문제 등을 놓고 계속 불편한 관계다. 일본은 경제보복론까지 들먹이고 있다. 
19세기 말과 다른 점은 북한이란 강력 변수까지 더해졌다는 점이다. 새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으로  지금은 잠시 남북화해 분위기다. 하지만 핵무장으로 미국과 중국까지 위협하는 북한에게 한국은 언제든지 우스운(?)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다. 최근 북한당국자들의 발언 등에서 이미 그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혹시 미국이 남한에서 진짜 철수해 버린다면  힘으로 다시 남한을 제압하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남북평화공존이나 1국2체제 연방제통일은 그나마 최선의 시나리오다.
위에서 보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5개국 리더들이 하필이면 모두 깡패 같은 스트롱맨들이다. 정글의 시대가 더 본격화한다면 한국은 이러저리 난타당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힘없어 보이고, 얕잡혀 보인다면 말 한마디에 트럼프에 당할 수 있고, 시진핑과 김정은에 당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그나마 강한 경제력으로  존재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앞날엔 하향길이 훤히 보인다.  주력산업의 경쟁력 하락, 중국의 거센 추격, 인구 절벽, 난무하는 포퓰리즘 등으로 한국경제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19세기 말처럼 또다시 당하지 않으려면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기르든가, 아니면 외교뿐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선 절묘한 외교술밖에 없다. 탁월한 언변으로 강동6주를 되찾아온 고려의 외교대가 서희 같은 인물도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가지 중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나 모두 ‘설마 어떻게 되겠어? 여태껏 잘살아 왔는데···’라는 분위기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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