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감독의 스포츠, 변호사의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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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석 변호사(법무법인 갑을)
입력 2018-1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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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호사 역할에 대한 고찰

2018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축제인 월드시리즈가 끝났다. 아메리칸 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는 정규 시즌에서 최다승을 기록한데 이어 월드시리즈에서도 LA 다저스를 4승 1패로 누르고 우승했다. 월드시리즈의 3차전은 연장 18회까지 가는 역대 최장 월드시리즈 경기 기록을 세우는 등 스토리도 풍성했다. 류현진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선발로 등판하면서 국내 팬에게도 어필할 요소는 많았다. 하지만 여느 시리즈와 달리 월드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경기가 모두 마무리된 이후에도,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된 이름은 바로 ‘데이브 로버츠(David Ray Roberts)’였다. 패장인 LA 다저스의 감독이다.

요지는 ‘로버츠 감독의 경기 운영이 다저스를 망쳤다’는 것이다. 현지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트윗을 통해 비판을 했다고 하니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돌버츠’라는 조롱 섞인 지칭과 원색적인 비난들은 바다 건너 한 프로 야구팀 감독을 향했다. 이러한 기조를 보면 야구라는 스포츠가 마치 감독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최종 의사결정권자라는 측면에서, ‘스포츠는 감독이 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로인해 선수들의 활약이 잊힌다는 점은 문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보스턴 선수들의 멋진 활약과 투혼은 ‘상대팀 감독이 바보’라는 프레임 속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요컨대, ‘내가 잘한 게 아니고 상대방이 못한 것’이다. 다소 의아한 점은, 이런 기조와 무관하게 감독과 프로 선수들 사이의 연봉 격차는 엄청나다는 것인데, 이는 스포츠의 승패를 결정짓는데 감독의 비중이 선수의 비중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다소 비약에 가까운 비유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법률적인 분쟁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5 대 5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아닌 까닭에 상담 단계에서 수임 단계를 거쳐, 실제로 소송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불리는 존재한다. 애초에 승리하기 희박한 주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심증으로는 충분하지만 물증이 현저하게 부족하여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경우도, 혹은 유리하게 흘러가다가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가 발견되어 모든 주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하게도, 그 반대의 경우에 서는 적도 많다. 그렇다면 이 소송의 승소와 패소는 과연 변호사의 능력에 달린 것일까. 종종 변호사는 ‘데이브 로버츠’가 된다. 최선을 다했으나 몇 가지 오판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를 전부 떠안고, 비난받기도 한다.

나는 작성한 서면은 변호사의 자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송의 승패는 변호사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소송의 승패는 사실 관계와 엄밀한 입증, 그리고 법리적으로 옳은 행위가 가르는 것이다. 변호사의 역할은, 위의 요소가 누락되지 않도록 정리하고 법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사용하여 전달력을 끌어올리며,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의뢰인이 모를 수 있는 법리적인 지식을 추가해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연히 승소해야 하는 사건을 승소할 수 있도록, 억울하게 결과가 바뀌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면 족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간혹 이기기 어려운 소송을 이기는 변호사가 있긴 하다. 하지만, 가령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에게 승리한 것처럼, 아주 불리하다고 여겨진 스포츠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언더독 팀의 감독도 존재한다. 몇 가지 예외는 보편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불성실함과 방만함까지 역할이 크지 않다는 연유로 비판과 비난에서 자유로워선 안된다. 더불어 과한 무능함까지도 포장되어선 곤란할 것이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는 가치를 전제한다면, <감독의 스포츠, 변호사의 소송>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책임 소재의 집중이, 조금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월드시리즈가 끝난 다음 날, 종목을 달리하여 큰 이벤트가 있었다. 영화에서도 소재로 쓰인 바 있는 ‘엘 클라시코’, 스페인 프로 축구 리그의 양대 산맥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라이벌 전이었다. 경기 중반의 좋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고비를 넘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는 결국 라이벌에게 1 대 5로 대패를 당하고 만다. 다음날 우리에게 들려온 소식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훌렌 로페테기 감독의 경질이었다. 시즌이 개막한지 두 달, 공식전 14경기 만에 이루어진 결정이다.

이를테면 패소한 변호사는 패배한 감독처럼 모든 것을 책임지지는 않으니, 그래도 조금은 덜 서글픈 직업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작은 위안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사진=법무법인 갑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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