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복지 新견문록 ②저출산 케어] 스웨덴 ‘라떼파파’가 흔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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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스웨덴) 석유선 기자
입력 2018-11-0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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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년부터 아빠휴직 도입, 현재 1년에 100일이상 사용

  • 정부, 부부 휴직 땐 수당 지급…11년새 출산율 1.9명대로 상승

스웨덴의 라떼파파들이 점심 식사 후 식당 앞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연수 기자단 제공]


“미안한데, 언제까지 질문하실꺼죠? 지금 벌써 4시40분이에요.”

퇴근시간(5시)가 다가오자, 스웨덴연금청의 올레 세테르그렌(Ole Settergren) 이사는 초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질의응답이 길어져 5시10분이 되자, 끝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궁금한 것은 이메일 보내세요. 굿바이~”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 하교 후 오매불망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초등학생 자녀 픽업에 늦은 탓이다.

세테르그렌처럼 스웨덴 남성들은 이미 부모 공동육아가 몸에 배어 있다. 지난 달 14일부터 나흘간 머문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곳곳에서 흔하게 만난 ‘라떼파파(latte papa)’들이 이를 방증했다. 점심식사 후 한 식당 앞에선 3명의 라떼파파 클럽을 만날 정도였다. 라떼 파파는 엄마가 출근한 사이 한 손엔 커피(카페라떼)를, 다른 한 손엔 유모차를 붙잡고 육아를 하는 아빠를 뜻하는 말로, 스웨덴이 원조다.

스웨덴은 1974년부터 여성 인력 활용의 중요성을 깨닫고, 경력 단절 여성을 줄이기 위해 세계 최초로 ‘부모 공동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여성에만 해당하던 출산휴가 제도를 없애는 대신 부모 모두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겨났다. 말은 ‘부모 공동’ 육아휴직인데, 육아에 서툰 남편들은 아내에게 휴가일을 양도하기 일쑤였다. 이에 1991년 ‘육아휴직 남성 할당제’를 도입했다. 아빠는 무조건 3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토록 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해마다 남성의 할당제 일수를 점차 늘렸고, 현재 스웨덴 아빠들은 평균 107일간 육아휴직을 쓰는 것으로 집계됐다. 스웨덴 엄마는 보통 1년 정도 육아휴직을 사용한다. 이후 엄마가 회사에 복귀한 후 아빠가 적어도 1년에 3분의 1 정도는 육아에 전념하는 셈이다.

육아휴직은 아이가 12살까지, 최대 480일(16개월)을 쓸 수 있다. 무엇보다 휴직기간 급여가 충분히 보전된다. 정부는 390일(13개월)까지 소득의 80%까지 보전하고, 나머지 90일(3개월)까진 다소 낮은 정액 급여를 지급한다. 또 부부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사용하면 ‘양성평등 보너스’까지 지급한다.

가장 부러운 것은 임시휴직이다. 12세 이하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당일 아침에라도 ‘임시휴직(아이 한명당 8일까지)’를 낼 수 있다. 7일 이하 휴직까지는 별도의 진단서도 필요 없다. 그저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임시휴직은 연간 120일까지 낼 수 있고, 이 기간 소득의 80%가 보전된다. 우리나라가 지난 9월 첫 지급한 아동수당은 스웨덴의 경우, 16세까지 100유로씩 부모에게 100% 지급된다. 육아 휴직과 임시 휴직 모두 정부가 1930년대 도입한 ‘부모보험’ 덕분이다.

스웨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은 결국 사회 인식과 기업문화를 바꿨고, 남녀 공동육아가 익숙한 문화를 정착시켰다.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수직 상승했다. 1999년 1.49명까지 떨어졌던 스웨덴의 합계 출산율은 2010년 1.98명으로 상승한 뒤 1.9명선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1.05명(2017년 기준)인 것에 비하면 2배 수준이다.

스웨덴 정부는 출산율 목표를 정해서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 아니었다. 군나르 앤더슨((Gunnar Andersson) 스톡홀롬대 인구학과 교수는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면서 “여성이 직장에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든 일·가정 양립 정책이 가장 큰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니클라스 뢰프그렌(Niklas Lofgren) 스웨덴 사회보험청 대변인도 “1950년대부터 여성의 가사와 육아 전담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됐고, 이후 현재와 같은 복지시스템 마련에 10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느리게 매우 느리게 발전해 온 것”이라며, 한국도 이제 그 준비를 하면 된다고 응원했다.

지난 4일 당정청과 야당이 오랜만에 의견 일치를 이뤘다. 내년 1월부터 소득에 관계없이 아동수당 100% 지급을 결정한 것이다. 이제야 한국도 복지의 느린 걸음이 속도를 내나 보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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