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정부와 해운업계, 이제 꿈에서 깨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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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기자
입력 2018-10-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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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운재건 정책 6개월…‘자금 퍼주기’ 되풀이

  • 상황파악 못하는 정부…“지금 자존심 세울 때인가”

[배군득 기자]


우리나라 해운업을 얘기하려면 ‘한진해운 부도’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30년간 찬란했던 황금기를 뒤로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해운업의 현 주소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큰 상처다. 그동안 수없이 거론된 탓에, 이제는 우리나라 해운업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인지되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에서 우리나라는 없다. 그만큼 지금의 글로벌 해운시장은 지난 10년간 합종연횡과 치킨게임이 이어지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우리 해운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런 위기상황에서 한뜻으로 뭉쳐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등 해운 컨트롤타워도 구축했다.

그런데 처음 의욕과 달리, 지금의 정부와 업계를 보면 아직도 옛 영광에 도취된 모습이 엿보인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절박한 심정이 퇴색됐다. 업계는 여전히 정부의 손길만 바라보고 있다. 정부도 국적선사만 살리면 된다는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혀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4월 내놓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은 우리나라 해운구조를 확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발표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과연 해운업은 어느 정도 변화를 보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도 꿈 속’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정책 완성도도 부실하지만, 정부와 업체가 현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로 글로벌 해운업에 도전하겠다는 것이 무모할 정도로 우려스럽다.

우리는 이제 정상에서 내려온 그저 그런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시 도전하려면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국적선사를 살리겠다고 5조원을 투입하는 지금도 경쟁국가에서는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초대형 선박을 건조하고, 잃어버린 항로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와 업계가 ‘발상의 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초대형 선박을 갖추고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해운업은 변화의 폭이 빨라졌다. 컨테이너 물동량 흐름도 마찬가지다. 2년 전 파나마운하 확장 이후, 글로벌 선사들은 일찌감치 대형선을 투입해 시장을 장악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어땠는가. 한진해운이 글로벌 흐름에 대처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현대상선과 SM상선은 상생보다 반목을 택했다.

현대상선은 내부적으로 자신들이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적자가 눈덩이인데도 정부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크다.

SM상선은 해운업계 이단아다. 국적선사 지위도, 그렇다고 정부의 관심도 못 받는 처지다. 똑같이 글로벌 해운선사이고, 똑같이 컨테이너 물류를 싣고 항로를 개척하는데도 한쪽은 국적선사, 한쪽은 그냥 해운업계로 분류되고 있다.

해운 컨트롤타워라고 설립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허수아비’로 굳어지고 있다. 도통 정부의 간섭을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 황호선 사장은 “밖에서 보던 해운업과 안에서 보는 해운업은 천지차이”라고 말했다. 해운업에 만연한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현재 정부의 해운재건 정책은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정말 해운업이 절박하다고 느꼈다면, 판 전체를 갈아엎을 정도로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절실한 부분은 물론 경영진이다. 경영진의 대수술 없이는 해운재건은 요원하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려면 머스크 등 해외 업계의 유능한 경험자들이 우리 정부와 업계에 포진돼야 한다.

지금 우리 해운업계는 인공호흡기를 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 이런 상황임에도 겉으로는 해운재건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변한 것이 없다. 호흡기를 뗄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 우물 속에서 보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해운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도 버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와 업계는 ‘황금기’라는 꿈속에서 깨야 한다. 정부의 해운재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1~2년 안에 다양한 수술이 필요하다. 작업 속도는 빨라야 한다. 정책을 발표한 지 벌써 6개월이 흘렀다. 일반인도 아는 뻔한 수(현대상선 살리기)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글로벌 해운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초대형 선박을 바다에 띄울 시점에는 초대형 선박의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운업을 국가산업으로 인식한다면 ‘막대한 자금’이 아니라 ‘유능한 인재’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면서도 못하는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재편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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