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쇼크 10년]위기의 뇌관 된 신흥시장...리먼쇼크가 禍 불렀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신회 기자
입력 2018-09-07 04: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上-②]리먼쇼크發 '돈잔치' 즐긴 신흥시장 美통화긴축 역풍…실물경제·금융시스템 악순환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썰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헤엄치는지 알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불거진 신흥시장 위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썰물처럼 유입된 유동성이 빠져나가면서 비롯된 사달이기 때문이다.

◆신흥시장 '리먼쇼크' 부메랑…연준 통화긴축 비상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지만, 역설적으로 신흥시장은 오히려 초고속 성장세로 세계 경제 회복을 주도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이 쏟아낸 막대한 경기부양 자금이 밑천이 됐다.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영란은행(BOE) 등은 금융위기에 통화완화 공조로 맞섰다. 기준금리를 제로(0), 심지어 마이너스(-) 수준으로 낮추고, 시중 자산을 매입하며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른바 '양적완화'다. 연준, ECB, BOJ의 장부상 총자산은 2009년 약 6조5000억 달러에서 지난해 14조 달러로 불어났다. 양적완화로 푼 자금이 7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의미다. 연준 혼자서만 4조 달러 넘는 자금을 공급했다.

천문학적인 유동성은 대거 신흥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시장에서 위험만큼이나 큰 고금리 매력을 즐겼고, 신흥시장도 유례없는 초저금리 자금을 반기며 부채를 비롯한 위기의 불씨를 키웠다.

문제는 글로벌 돈잔치를 주도한 연준이 통화정책 기조를 뒤집어버렸다는 점이다. 2014년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에 나서 같은 해 10월 양적완화를 완전히 중단했고, 이듬해 12월부터는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6월까지 7차례에 걸쳐 2008년 12월부터 0~0.25%로 동결한 금리를 1.75~2%로 높였다. 연준은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세 번째 금리인상을 단행할 전망이다.

ECB도 곧 양적완화를 중단할 태세다. BOJ 안팎에서도 통화긴축 시점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련의 통화긴축 움직임은 신흥시장으로 향하던 글로벌 자금의 흐름을 역전시키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 최근 여러 신흥시장에 몰아닥친 투매 바람도 결국 이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신흥시장 곳곳에 '뇌관'…눈덩이 부채 10년 새 3배

전문가들은 리먼쇼크가 일어난 지 10년 만에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촉발할 가장 위험천만한 뇌관 가운데 하나로 신흥시장의 부채를 꼽는다. 블룸버그는 최근 세계 경제가 교과서 같은 신흥시장 위기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고 경고했다. 상당수 신흥국이 막대한 부채와 신용거품 등 교과서가 제시하는 위기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더해 상당수 신흥국이 취약한 은행, 재정·경상수지 적자(쌍둥이적자), 막대한 단기외채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외환보유액, 부정부패, 정치·경제 리더십 부재와 같은 악재를 안고 있다. JP모건체이스, 블랙록 등 월가 거물들이 신흥시장 위기의 전이 가능을 경고하고 있는 이유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 5월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글로벌 부채는 237조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년 새 10%, 2007년에 비하면 43% 늘었다.

신흥시장은 더 심각하다. 최근 5년 새 늘어난 글로벌 부채의 80%가 신흥시장에 집중됐을 정도다. 신흥시장의 부채는 2007년 21조 달러에서 지난해 63조 달러로 세 배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45%에서 210%로 높아졌다.

신흥시장에선 비금융기업·가계 부채, 외채 증가세가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 신흥국들이 2007년 이후 달러·유로·엔화로 빌린 부채만 약 9조 달러로 두 배나 증가했다. 외채는 연준의 금리인상 등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달러 강세가 더 심해지면 신흥국 통화 가치는 더 추락하고, 달러빚 상환 부담도 커진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도 1994~95년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공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이 짊어진 외채가 GDP의 20~5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신흥국들이 2019~2020년에 걸쳐 상환하거나 이를 위해 추가로 조달해야 할 부채가 1조5000억 달러에 이르지만, 상당수가 이를 메울 여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단기외채·쌍둥이적자 감당 못하는 외환보유고

쌍둥이적자도 만만치 않다. 유동성 잔치와 맞물린 방탕한 재정운용과 소비의 결과물이다. 터키와 아르헨티나의 쌍둥이적자는 GDP의 8.7%, 10.4%에 이른다. 파키스탄은 10%가 훌쩍 넘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공 우크라이나는 5%를 웃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의 적자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단기외채와 경상수지 적자 등을 메우려면 외환보유액이 충분해야 하는데 상당수 신흥국이 그렇지 못하다.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경우 외환보유액을 단기외채, 경상수지 적자 등의 합으로 나눈 대외커버리지비율이 각각 0.6, 0.4에 불과하다. 빚을 더 내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남아공도 대외커버리지비율이 1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중국과 브라질은 각각 3.1, 2.5로 외환보유액이 넉넉한 것 같지만, 이들이 실제로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는 외환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불을 댕긴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사태 때도 이 나라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과장했다.

블룸버그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이 취약하면 상호작용 속에 악순환을 낳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장에서 자본유출이 일어나면 현지 통화 가치와 함께 채권·주식·부동산 등 다른 자산가격이 덩달아 하락하는 식이다. 돈 여유가 빠듯해지면 자본조달비용(금리)이 올라 대출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은행들도 위기를 겪게 된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대응이 사태를 더 꼬이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30일 페소화 급락에 맞서 기준금리를 단숨에 15%포인트 인상, 세계 최고인 60%로 높였다. 그럼에도 페소화 급락세는 진정되지 않았다. 급격한 금리인상이 성장세를 위축시키고 채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