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인생'은 위기 아닌 기회…일본의 '라이프 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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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8-08-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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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초고령화 사회문제서 기회로…정부·기업 등 일하고 소비하는 노인 주목

2016년 10월 일본에서 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린다 그래튼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의 '라이프 시프트(Life Shift)'. [사진=아마존 재팬 웹사이트 캡처]


린다 그래튼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가 '100세 인생(The 100-Year Life)'이라는 책을 처음 낸 건 2016년 6월이다. '장수시대의 삶과 일(Living and Working in an Age of Longevity)'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처음 본 서구 독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고령화 시대에 대한 로드맵이나 경고 정도로 본 이가 대부분이었다. 기업 인사 담당자나 연금 전문가들이 그나마 호기심을 가졌을 뿐이다.

같은 해 10월 이 책이 일본에서 '라이프 시프트(Life Shift)'라는 제목 아래 '100세 시대의 인생전략'이라는 부제로 출간됐을 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감전' 같은 충격이 세계 최고령 국가를 강타했다고 묘사했다.

그도 그럴 게 일본은 초고령화로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다. 전체 인구의 27%가 이미 65세를 넘었고, 50세 이상이 절반이나 된다. 10여년 전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압도했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에 대한 의료비용이 치솟았고, 주민 5명 가운데 1명이 치매에 시달리는 '치매마을'이 등장했다. 잿빛 같던 '100세 시대'의 극적인 변화(shift) 가능성을 강조한 그래튼의 책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다.

일본에서 이른바 '햐쿠넨 진세이(100세 인생)'에 대한 인식 변화는 곳곳에서 일어났다. 고령화를 위기나 문제가 아닌 기회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일본 증권사들은 양로원을 운영하거나 간병인을 파견하는 기업, 고령 노동자를 돕거나 대체하는 로봇을 만드는 기업, 노인들을 위한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기업을 매수 추천 종목으로 꼽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59세 이상 인구의 소비지출이 급격히 늘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했다.

일본 기업들도 초고령화에 따른 재정적 부담보다 일하려는 건강한 노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FT는 일본노년학회에서 노인 기준 연령을 '65세 이상'에서 '75세 이상'으로 높이자는 제안이 나온 가운데 일본 재계에서 '햐쿠넨 진세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고령화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사업모델을 모색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제조업계에서는 로봇공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고령 노동자의 몸을 지지하거나 보호할 수 있는 외골격 작업복을 만들었다. 일본 양대 증권사인 노무라와 다이와는 노인 고객들을 위한 면대면 서비스 인력을 확충하는 식으로 문턱을 낮췄다.

일본 정부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래튼 교수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요약본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책상에 올랐다고 한다. 2012년 말 장기불황 탈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아베 총리가 개혁성과를 내지 못해 한창 어려움에 처했을 때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를 구성했다. 교육, 고용, 사회보장 등 여러 방면에서 '100세 시대'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전문가회의체다. 그래튼 교수도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절반이 100세 인생을 살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50년 전만 해도 327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6만7824명이나 됐다. 인구 비중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그래튼 교수는 일본의 대응이 늦은 건 사실이지만, 이만한 나라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응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100세 인생'을 정식으로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큰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는 지난 6월 장기 간병인 급여를 인상하고 중간 경력 고용을 확대하기 위한 재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고령자 고용을 늘리기 위한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냈다. 일본 내각부는 이틀 뒤 이를 채택했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고용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정년을 65세로 높이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대다수 일본인이 일을 더 하고 싶어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내각부가 최근 고령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35%는 적어도 70세까지는 계속 일을 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래튼 교수가 '100세 인생'에서 ‘교육-일-퇴직’으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삶이 아닌 ‘다단계 삶’을 살아야 한다며 평생학습을 강조한 이유다.

일본 연금투자 전문가인 야마자키 슌스케는 지난해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쓴 칼럼에서 인생을 24시간에 비유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가 오전 7시 30분에 사회인이 되고 저녁 7시쯤 정년에 도달해 약 5시간의 노후를 보낸다고 봤다. 70년 인생 중 22세에 사회인이 돼 55세에 정년을 맞는다는 가정에서다.

이들의 자녀 세대는 약 85년의 삶에서 65세에 정년을 맞는다. 저녁 6시부터 노후를 맞는 셈이다. 100세 인생의 노후는 훨씬 더 길다. 정년을 65세로 보면 오후 3시 30분이다. 100세 인생, 오후 3시 30분부터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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