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보수, ‘작은 정부’와 ‘감세’를 말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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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입력 2018-08-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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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재호 초빙논설위원 · 동신대교수(정치학)]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보수는 동네북이 됐다.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기에 바쁘다. 예년 같으면 극진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안보의 주역이자 근대화의 역군으로 흘린 피와 땀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을 터. 찬밥신세가 된 건 정권이 진보 쪽으로 넘어간 탓이 크다. 보수가 존재의 원년으로 삼아온 1948년 8월 15일마저 격하되는 분위기다. 진보 측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으로 본다.

보수가 자초한 면이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대담(문화일보 2018년 7월 27일)에서 한국의 보수는 “너무 쉽게 집권해 도덕성도 약하고, 한 나라를 운영하는 지배적 정치세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대한 고민과 노력도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보수의 국가운영 원리 중 성장정책을 제외하곤 보수가 고민해서 만든 건 별로 없고, 반공이든 냉전이든 모두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했다.

부인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런 반문을 해본다. 그런 보수가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을 한 세대 만에 근대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전후(戰後) 유일한 국가로 만들었을까. 친일(親日) 청산도 못하고 분단으로 ‘미완의 광복’에 그쳐, 한 진보 정치인의 표현대로 ‘궤멸의 대상’에 불과한 보수가 이끈 나라가 말이다. 그 나라가 지금 세계 10대 무역대국이다.

최 교수는 보수의 재건 방향에 대해 좀 더 평화 지향적인 남북관계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제도에 대한 더 적극적인 수용을 권고했다. “성장 지상주의에 집착해 사회 최상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분배와 복지의 확대를 통해 성장과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발전국가’적 경제운용을 재구조화하라”는 조언도 했다. 보수는 좀 더 자유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사회 구성 원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그의 처방은 김진현 세계평화포럼이사장의 처방과는 결이 다르다. 김 이사장은 ‘대한민국 70주년 한반도 창조의 길’이란 제하의 칼럼(조선일보 2018년 8월 6일자)에서 “대한민국의 70년 성취를 부정하는 반역과 반동을 이겨내고, 인권과 민주주의 잣대로 북한의 3대 세습독재를 겨누어 북 동포를 구휼하고, 통일·자강(自强)·지구촌 지향의 ‘대한민국 민족주의’로 새 70년을 향해 다시 전진하라”고 촉구했다.

보수의 몰락에 대한 질책과 진단은 넘쳐나지만 처방은 없는 현실에서 이 두 사람의 견해와 언명(言明)은 값지고 소중하다. 어느 쪽이 더 적실성을 갖느냐는 건 그 다음 문제다. 정돈된 담론의 등장만으로도 보수가 마침내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겸허하게 그 흐름에 올라타 최 교수의 제안처럼 “이념과 가치, 비전을 다투는 자유경쟁의 시장으로 나아가 승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이 최근 정부의 ‘먹방 규제’를 ‘국가주의’로 규정함으로써 논쟁을 야기한 것은 조금 아쉽다. 지엽말단적인 데다가 언어 선택도 정교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과 교분이 두텁다는 유시민은 저서 '국가란 무엇인가'(2018, 돌베개)에서 국가주의를 ‘이념형 보수’로 규정하고,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를 그 장본인으로 지목했다. 국가주의 유산(遺産)에 기대어 온 게 자유한국당인데 ‘진보의 아이콘’을 자처하는 이 정권에 대고 국가주의라고 했으니 통하겠는가.

최 교수와 김 이사장의 ‘보수 재건’ 담론에 감히 끼어들 만한 깜도 못 되지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론 모름지기 보수라면 ‘작은 정부’와 ‘감세’, 그리고 ‘안보’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핵심원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에 있다. 개인과 국가, 시장과 국가와의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다양한 이론과 정책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기에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모르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정치 현실 속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선거도 하나마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언필칭 보수라면 선거에서 몇 번 질 각오를 하고서라도 작은 정부와 감세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금 가지고 진보와 복지 경쟁이나 하려는 보수는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당의 지향점으로 자율, 기회균등, 공정을 제시했다. 틀린 방향은 아니나 좀 더 유권자 친화적인(voter friendly)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 작은 정부와 감세만이 지속가능한 복지의 확충을 가능케 한다는 신념을 갖고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용기와 배짱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작은 정부’와 ‘감세’를 내건 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아니다, ‘작은 정부’와 ‘감세’를 내건 당이 선거에서 지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무슨 말인가? 이 두 나라가 공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논쟁의 장(場)을 보수가 만들어가야 한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만 찾으려 할 게 아니라 사막을 벗어날 궁리를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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