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의 위대한 어머니 김원상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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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입력 2018-06-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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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호국보훈의 달에 우리가 되새겨보아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다.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윤봉길 의거다. 해방의 단서가 된 카이로회담에서 중국 장제스 총통이 한국의 독립을 주창해 그 선언문에 명문화시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의 독립을 약속받은 배경에는 윤봉길 의거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윤 의사가 이뤄낸 그 위업 뒤에는 어머니 김원상 여사가 있었다. 충남 홍성군 성북면 석정리에서 아버지 경주 김씨 인제 선생과 어머니 천안 전씨 사이에 1889년 12월 16일 장녀로 출생한 김 여사는 결혼 전 이미 한글과 한문을 배워 당시 농촌 아낙네로는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지닌 신여성으로 자식교육에 주력했다.

장남 봉길이 6살 되던 해 큰아버지 윤경에게 천자문을 배울 때 성질이 급하여 넓을 홍(洪)자를 널브 널브하며 더듬거려 친구들로부터 ‘말더듬쟁이’라고 놀림을 받게 되자 봉길은 공부하기 싫다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농사일도 팽개치고 봉길의 천자문 공부를 손수 복습시켰다. 봉길이 천자문을 마쳤을 때 어머니도 책을 보지 않고서도 줄줄 외웠다. 어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글공부에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봉길에게 어머니의 가르침은 등불이었다.

봉길이 살던 동네의 3·1운동 지도자는 이웃 마을의 최정구였다. 김원상 여사는 70~80명과 함께 이에 참여했고 당시 덕산보통학교 2학년생인 봉길을 자퇴시키고 일제 식민지 교육을 배격했다. 이후 봉길은 서당 오치서숙의 매곡 성주록 선생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한학에 매진했다. 같은 고향 출신인 사육신 성삼문을 존경했던 김 여사는 대의와 절의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버린 그분의 선비정신을 봉길이 좌우명으로 삼고 살기를 바라며 강조했다.

이런 영향을 받은 봉길은 서당에서 틈만 나면 학동들에게 성삼문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를 본 스승은 학업을 마치고 서당을 떠나는 봉길에게 자신의 호 매곡에서 ‘매’자와 성삼문 의 호 매죽헌에서 ‘헌’자를 따서 ‘매헌’이란 호를 내렸다.

공부를 마친 봉길은 야학당 개설, 부흥원 건립, 독서당 설치 등을 통해 농민운동을 펼쳤다. 봉길의 농민운동은 어머니가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가능했다. 이 무렵 봉길이 일본어를 공부하자 마을 어른들은 이를 만류했으나 어머니는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며 적극 권장했다. 일본어 습득은 훗날 상해의거가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거사 당일 입장권이 없던 윤 의사는 홍커우공원 정문을 지키는 중국인 앞으로 다가가 유창한 일본말로 일본인 행세를 하며 통과할 수 있었다.

윤 의사가 상해의거 2달 전 동생 남의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해사변은 확전 될 것 같다. 이대로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어머니는 ‘집은 걱정마라. 너의 길을 가라’라는 요지의 답신을 보냈다. 죽음의 길을 만류치 않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놀라움을 넘어 공명을 울린다.

그 기백은 상해의거 다음날 더욱 빛난다. 4월 30일 새벽 일경이 윤의사 집을 기습해 가택수색하며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을 마당에 꿇어앉히고 집안을 풍비박산내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김 여사는 ‘우리 봉길은 대한남아로서 할 일을 했다.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라’고 일경을 호통쳤다. 또한 ‘봉길은 의거일에 대한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면서 생일날 대신 의거일에 생일상을 차리며 해방될 때까지 13년간 일제에 항거했다.

위당 정인보는 1949년 12월 환갑을 맞이한 윤 의사 어머니께 축시를 봉정했다. ‘···몸으로 고금에 없는 의를 버티었으니 김 부인의 수는 가장 갸륵도 해라. 듣자니 어머니의 범절이 아들을 잘 가르쳤다···’ 이처럼 윤봉길 의거는 어머니의 교육과 성삼문의 선비정신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김원상 여사는 아들이 꿈꿨던 해방된 조국의 품에서 1952년 5월 10일 편안히 생을 마감했다. 정부가 허가하면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윤봉길 의사 사적지 경내에 김원상 여사 추모비를 건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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