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빨리 통일되어야” “이북에게 속아”…탑골공원의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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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 기자
입력 2018-04-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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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들의 홍대’ 탑골공원, 27일 평온함 감돌아

 

27일 오후 12시 서울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박길현(70)씨가 홀로 벤치에 앉아 있다.[사진=강민수 기자]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해야지. 세월이 얼맙니까. 이제 시기가 됐잖아.”

27일 정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박길현씨(70)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박씨는 매일 집 근처 탑골공원을 들른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박 씨는 또래의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남북문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화의 집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이날 ‘어르신들의 홍대’라는 탑골공원을 찾았다.

탑골공원 입구인 삼일문을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60·70대 이상 노인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이곳은 평온함이 감돌았다. 벤치에 혼자 앉아 사색에 잠기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시 노인복지센터’라는 파란색 조끼를 입은 노인들은 산책을 잠깐 즐기더니 삼삼오오 빠져나갔다. 부부로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대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노인도 보였다. 전국의 들뜬 분위기와 사뭇 다른 이곳, 노인들은 과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들어봤다.

서울시 강북구에 거주하는 김모씨(75)는 팔각정 한가운데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여러 번 정독한 듯 신문은 구겨진 자국이 선명했다. “이북 놈들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김 씨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반신반의”라고 표현했다. 평화협정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북한은 믿을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한두 번 거짓말한 게 아니잖소.” 김씨는 혀를 끌끌 찼다.

왜 믿을 수 없다는 것일까. 김 씨는 북한 주민들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98년도에 여행차 중국 단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함경북도 주민들이 지원 식량인 쌀 500가마를 전해 받는 모습을 국경 너머로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쌀을 조금씩만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여행가이드의 대답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공산당원이 한 말 이상 가져가면 압수해버리기 때문이라 했다. “어차피 뺏기는데 뭣 하러 무겁게 가져가냐, 그 말이여. 그 정도로 한심스러운 나라인 것이여.” 그는 북한에 대한 지원은 좋지만, 국민들에게 전달되는지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김씨는 지인 중에 실향민도 있었다고 했다. 황해도에서 이남으로 내려온 그의 지인은 십 년 있으면 해방된다는 말을 믿고 이남에 있다가 아들 둘과 생이별을 했다. 수십 년 만에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을 김 씨의 지인은 손꼽아 기다렸지만,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아들이 만나자마자 그러더래. 딸라(dollar) 주소.” 아들은 만나자마자 돈만 달라고 했다. 너무 짧고 형식적인 행사에 오랜만에 아들은 남남 같았다고 그는 전했다. 김씨의 지인은 85살에 숨을 거뒀다. “어차피 보여주기식으로 할 바에야 안 하느니만 못혀.”

그러나 앞서 말한 박길현씨(70)의 의견이 달랐다. 그는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몇 사람 있는데,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그는 한반도의 상황을 동남아 국가인 미얀마·태국과 비교했다. “걔네는 민족도 다른데 강만 건너면 되는데, 우리는 한민족끼리 왜 이래, 지금.”

오후 1시에 강남 지역 노인들의 메카라는 잠실역 지하상가를 찾았다. 상가 벤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장년층이 보였다. 세 명이 무리 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벤치에 찾아가 말을 걸었다. 전직 공무원이라는 홍모씨(76)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는 “별 볼 일 없다”고 표현했다. 어차피 결정은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기대하지만, 나는 안 한다”며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홍씨의 옆에 서 있던 박모씨(79)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마 전 공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그는 “남북이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큰 결과물도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의 선례를 말하며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했다. 박 씨는 “이북에 많이 속았다”며 “이런 걸 과거에도 많이 겪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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