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규의 알쓸軍잡] 21세기 군대에서도 열일하는 ‘똥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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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규 기자
입력 2018-04-1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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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새 학기가 되면 대학가에서 '똥군기'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의 엄격한 군대 문화가 일반 사회에 흘러들어 정착하면서 나타난 문제인데요. 군에서는 이런 경직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체질을 개선하는 중입니다.

허례허식과 비효율이라는 구습을 타파하려고 전투력 증진과 무관한 제식을 손질하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간소화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전통’이라는 이유로 잘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4월15일 김일성 전 주석의 105번째 생일(태양절)을 맞아 북한 군인들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국군 주의 상징 거위걸음

군 행사에서 군인들이 상체는 꼿꼿이 세운 채,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들어 올려 걷는 것을 거위걸음(goose step)이라고 합니다. 거위걸음은 18세기 독일 프로이센 제국에서 시작돼 나치 독일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다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제정 러시아(파벨 1세)에 제식으로 채택된 이후 20세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수립되면서 세계 여러 공산국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날에도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군 행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군인이 군화 발소리를 내며 걷는 게 위압감을 주기에 전체주의 국가들이 체제의 위용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군화를 신고 의도적으로 고관절에 충격을 주면서 걷는 것이어서 비인간적인 제식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의장대가 아닌 일반 병사들이 거위걸음을 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한 곳입니다. 보통 대통령 취임 첫해 국군의 날 기념식 행사를 대규모로 치릅니다. 이때 병사들이 시가행진하는데요. 여간 고역이 아니라고 합니다.

기념식 행사 2∼3개월 전 전국 각지의 부대에서 차출된 병사들이 한여름 뙤약볕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도록 수 없이 분열 행진과 거위걸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군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해였던 지난해 준비시간이 부족해 올해 대규모 행사를 치를 예정입니다.

그나마 현재는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육군참모총장 이·취임 행사는 물론이고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이나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이취임식 때에도 적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이나 일선 병사들이 거위걸음을 연습해야 했습니다.
 

[30사단 경례 구호.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 북한과 우리만 붙이는 경례구호

모든 나라의 군대는 거수경례를 합니다. 상급자나 국기 등에 경의를 표하는 위함입니다. 그러나 경례구호를 붙이는 나라는 우리군과 북한군밖에 없습니다. 경례구호의 탄생 배경이 다소 황당한데요.

제2군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군사정변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모 부대장이 부하들에게 “대통령 각하께 경례 시에 충성이란 구호를 외쳐라”라고 지시했더니 박 전 대통령이 흡족해하며 정식으로 군 제식이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가 전래동화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충성이란 구호가 가장 유명하며 일반적으로 쓰이나 육군에서는 사단장 이상의 지휘관 재량으로 구호를 바꿀 수 있어서 고유의 구호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30사단 신병교육대에서는 ‘필승! 아이 캔 두(I can do)’라는 경례구호를 붙입니다.

육군이 1997년 경례구호가 많고 일체감을 높이기 위해 ‘충성’을 육군 기본 경례구호로 제정하고 사용을 권고했으나 경례구호에 부대 자존심이 걸렸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들이 기존 구호를 계속 사용하면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육군은 2014년 8월부터 국기게양식 등과 같이 제대 별로 활동하면서 군기를 표출해야 할 때가 아닌, 일상적인 경례나 개인별로 하는 신고 때에는 경례구호를 붙이지 않는 방침을 전면 시행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함께 복무하는 카투사는 미군을 만났을 때는 구호 없이 경례만 하고, 한국군을 만났을 때는 단결이라는 구호를 붙입니다. 북한은 우리 경례구호가 좋아 보였는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공군 사관학교 직각 식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3. 악폐습에 불과한 ‘직각 식사’

직각 식사는 대한민국 육군 사관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식사 군기 중 하나입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을 직각으로 유지한 채 식사를 하는 방식입니다. 한식의 특성상 밥과 국을 먹으려면 숟가락을 사용해야 하는데 사실상 버려지는 게 반입니다.

직각 식사의 원조는 미 해군 사관학교로 20세기 초에 시작됐습니다. 스퀘어밀(Square meal)이라고 불리며 미 육군과 공군 사관학교에서도 한동안 유행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들어 단순 악폐습으로 규정돼 거의 폐지됐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에 정신력과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하던 일본강점기의 잔재가 더해져 우리군만의 기형적인 문화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육군 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 공군 사관학교, 해군 사관학교 등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사관학교의 직각 식사가 계속해서 논란이 되자 올해부터 5주였던 직각 식사를 1~2주로 줄이기는 했으나 바른 자세와 올바른 습관을 배양하기 위해 직각 식사가 필요하다는 군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이 과정에서 군대 특유의 불합리성을 처음으로 맞닥뜨린 당혹감에 퇴교하는 생도가 매년 5~6명씩 나오곤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가혹 행위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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