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무작정 납치됐다"…최은희·신상옥의 납북에서 탈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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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희 기자
입력 2018-04-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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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 1월 14일 지인 따라나섰다가 바닷가서 납치

[사진=연합뉴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배우 최은희씨는 1943년 극단 '아랑'에 발을 들이며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21살이 되던 해인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데뷔한 그녀는 당시 만난 김학성 촬영감독과 결혼했다. 이후 '밤의 태양'과 '마음의 고향' 등에 출연하며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중 남편과 이혼한 최씨는 신상옥 감독과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최씨(당시 52세)는 자신이 교장을 맡고 있던 안양예술학교의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1978년 1월 14일 홍콩을 방문했고 "약속이 미뤄졌으니 바닷가에 놀러 가자"는 지인을 따라나섰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남자들이 나타나더니 무작정 배에 태우는 거예요" 최씨는 그렇게 납치됐고, 홍콩 수사 당국은 "북한에 끌려갔다"고 밝혔다.

홍콩에서 배를 타고 북한 남포항에 도착했을 때 당시 북한 2인자인 김정일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최씨를 보자마자 김정일은 "내레 김정일입네다"라며 자신을 소개했고, 며칠 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내가)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는 농담도 건넸다고 말했다.

이후 최씨를 찾으려고 홍콩에 건너간 신 감독도 1월 27일 홍콩을 시작으로 6개월간 프랑스, 일본, 동남아 등을 돌아다니다 7월에 홍콩에서 북한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은 납북된 지 5년 만인 1983년 재회한다. 최씨는 북한에 도착해 김정일의 지원을 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지냈지만, 신 감독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용소에서 보내며 3번의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최씨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납북 5년 뒤에 어떤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신 감독과 만났다. 이혼한 지 7년 만에 만났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하며 웃었다"고 전했다.

이들 부부는 북한에서 총 17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최씨는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자 이들의 신임을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고, 8년만인 1986년 3월 CIA 요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탈출에 성공한다. 

미국으로 망명한 두 사람은 3년간 워싱턴의 안가에서 생활하다 이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할리우드 진출을 꿈꿨다. 신 감독은 저예산 아동 영화 '3 닌자'를 제작 개봉해서 소소한 성취를 거두기도 했다.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거치다 1999년 한국으로 돌아온 신 감독은 대형 프로젝트를 꿈꿨지만 실패했고, 지난 2006년 타계했다. 최씨 역시 귀국 후 노령에도 끊임없이 영화를 향한 열정을 불태웠으며, 안양신필름예술센터 학장, 동아방송대 석좌교수,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명예교수를 맡으며 후배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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