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칼럼] 50대여! 이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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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8-03-2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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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칼럼]

 

   [사진=윤영걸 초빙논설위원]



올 들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운동을 보면서 불현듯 스친 생각이다. 왜 하필 50대가 주류일까.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의원, 고 조민기·조재현·오달수·김흥국씨와 같은 연예인들, 김기덕 영화감독, 미투를 촉발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사국장 등 주요인물들이 대부분 50대이다. 물론 일부는 억울하다며 하소연하고 있어 좀 더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도대체 50대 남성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남자의 갱년기는 여성 못지않게 복잡하고 난해하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차츰 여자로 변신한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대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으로 온몸이 촉촉해진 중년의 남성은 제2의 사춘기인 사추기(思秋期)를 맞는다. 드라마를 보고 눈물짓는가 하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토라진다.

또 한편으로는 나이에 굴복하기보다 젊음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나온다. 정신의학자인 루안 브린젠딘 박사는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이라는 책을 통해 성적 충동에 쓰이는 뇌의 공간은 남자가 여자보다 2.5배 정도 크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52초마다 한 번씩 섹스를 생각하는 반면, 여자는 하루에 한 번 섹스를 생각한다는 도발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40대는 인생의 터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지수가 낮다. 조직 내에서 중간간부로서 업무 부담이 크고, 가족부양이나 교육비 부담에 한눈 팔 틈이 없다. 50대에 접어들면 비로소 조직 내 지위가 어느 정도 안정된 단계에 들어선다. 공교롭게도 이때 언뜻언뜻 인생의 허무함에 뼛속이 시리기 시작한다. 자칫 오만하거나 방심하면 한방에 훅 간다. 50대는 막 터널에서 빠져나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하지만 이곳에는 낭떠러지와 지뢰가 즐비하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성적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반드시 육체적인 관계만으로 한정되지 않을 뿐이다. 50세가 넘은 사람이 유혹에 빠져 이성과 불장난을 벌인 결과는 그동안 쌓아왔던 사회적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 치명적인 일이다. 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조건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동물행동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에 불과하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겸허하고 자제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대기업 직원의 평균퇴직 연령은 51~52세다. 세대교체를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 오히려 더 큰 욕심이 꿈틀거린다. 이룬 것을 지키고 싶고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겹치는 딜레마의 50대다. 수명 100세 시대에 그만두고 뭘 하냐고? 퇴직과 은퇴는 엄연히 다르다. 퇴직 후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자 편견이다. 더 큰 인생의 평원을 위해 이륙(take-off)하자는 뜻이다.

50대는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떠나야 하는 시기이다. 세대교체는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자연스러운 일이고, 삶의 일부다.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하고, 개인의 인생이 풍요로워지려면 소리 없이 의자를 내주고 물러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일 떠난다는 각오로 아직 30~40년 남은 나머지 여행을 준비하라는 얘기다. 독수리가 부리를 갈 듯이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자신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성을 쌓은 사람은 이동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을 열고 기꺼이 제 영역을 포기할 때 새로운 도전은 시작된다. 해거름에 산마루에 서서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더 먼 길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길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가라. 그것이 길이 될 것이다”라는 폴 윌리엄스의 말은 길을 나서는 이에게 큰 격려가 된다. 꿈을 꾸고 도전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젊은 청년이다.

50대의 나이란 마치 전망대에 선 것처럼 앞에 펼쳐진 삶을 조망해볼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숨차게 뛰어오르던 일을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삶을 관조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란 죽음으로 가는 일방통행이다. 현재의 직장생활을 열심히, 그리고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은퇴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이미 늦다. 인생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고, 그 계획을 마지막까지 추진하는 힘이 필요하다.

나이 50은 인생에서 최종 결산이 아니라 기껏해야 중간결산표를 작성해보는 때이다.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그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진지해져야 한다.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을 갖기를 권한다. 혼자 책을 읽고 미래를 구상하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내적으로 더욱 성숙한 후반인생을 맞이할 수 있다. 50대의 삶에서 매력적인 것은 결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남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가난하지 않다면, 아니 혹시 그렇다 하더라도 50대의 매력은 인간성과 개성의 문제이다.

99세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연세대)는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라고 말했다. 50대는 60대 이후 황금기를 준비하는 나이이고, 더 큰 미래를 위해 길 떠나는 용기를 가져야 할 시기이다. 동물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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