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덤벼라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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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8-01-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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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O빠’란 말 잘못 썼다가 경친 사람이 여럿이다. 나는 가급적 이 말을 쓰지 않으려 한다. 의도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편을 가르려는 ‘저의’가 보여서다. 정치결사로 ‘남한산성’에 사람이 모이면 필시 ‘최명길 대 김상헌, 비둘기파 대 매파, 온건파 대 급진파’로 나뉘기 마련이고, 물불 안 가리는 ‘결사대’ 또한 생기지 않겠는가. 극소수의 벌꿀오소리 같은 극렬 활동도 눈에 거슬리지만 그것을 들어 지지자 전체를 ‘O빠’로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덤벼라 촛불’은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엄동설한에 거리에 몰려 나와 촛불을 들어 명예혁명을 이뤄냈던 시민들은 a빠, b빠, c빠가 섞여 있고, 그냥 ‘민주빠’ 시민도 있다. 이처럼 ‘촛불시민’은 정파 구획 선이 약해 ‘덤벼라’ 해도 날카로운 전선이 일시에 형성되지 않으리란 안심이 드는 이유다.

촛불 행렬은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나쁜 관행과 부패의 숙주를 청산하라고 요구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그 요구를 받들어 ‘적폐 청산’에 나섰고 관련된 거물 인사들이 줄줄이 '감빵'으로 가고 있다. 때마침 모 케이블 TV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란 드라마가 인기가도를 내달리는 것도 이 때문인가 싶다.

그런데 적폐 청산의 초점이 국정농단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맞춰지다 보니 먹고살기 빡빡한 자영업자, 소기업, 청년 백수, 중장년 실업자, 비정규직 등 서민들의 일상과 괴리가 생긴다. 적폐의 감옥행이 이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지 않는다. ‘적폐 청산으로 참민주주의가 실현되면 경제 정의가 살아나 서민들의 삶도 나아진다’지만 그것은 멀고먼 훗날의 일, 서민들은 당장 생계가 우선이다. 적폐의 기득권층은 이 틈바구니를 ‘적폐 청산 피로감’으로 교묘히 파고든다. 이를 간파한 ‘빠 촛불’은 그런 저항에 '지못미'(지켜 주지 못 해서 미안해) 탄환을 거칠게 응사함으로써 전체 촛불의 전선이 흐트러진다. 촛불이 청산해야 할 알짜 적폐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배해온 비민주적 사고, 천민자본주의, 몰인간성, 불평등, 차별의식 등이 낳은 관행, 문화, 제도, 법률이 바로 그 알짜 적폐다. 이것들이 우리 사회를 ‘눈물사회’로 만든다. 촛불은 이들을 걷어내기 위해 여전히 타오르고, 덤벼야 한다. 그러므로 촛불이 덤비는 대상에는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장 급한 것은 ‘선거’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내 지역 정당과 출신 찍는’ 선거문화가 저 모든 적폐의 근원이다. 이 지역주의 투표 의식을 깨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무능할 것이며 국민 앞에 오만할 것이다. 제도든 법률이든 이를 깨기 위한 장치를 하루빨리 설치하도록 ‘촛불은 덤벼야’ 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힘’으로 밀어붙이는 ‘비정한 갑질 근성’도 촛불이 걷어내야 한다. 연예인 ‘김병만 족장’이 무리를 이끌고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깨달은 ‘정글의 법칙’은 동료들을 향한 ‘존중과 배려’였다. 고만고만했던 개그맨 유재석이 국민 MC로 성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만이 자기와 무리의 공생번영을 부른다는, 살아 있는 교범이다. 시계는 작은 톱니바퀴, 큰 톱니바퀴들이 서로서로 맞물려야 돈다. 어느 하나라도 작다고 무시하고 빼버리면 시계는 죽는다.

‘귀가 차편이 끊겼는데 그날 번 몇 푼을 지키기 위해 새벽 눈길 3시간을 걸었다’는 대리기사 뒤에는 그가 혼신을 다해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 그에게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은행 돈으로 건물을 인수해 리모델링을 핑계로 상인들을 쫓아낸 후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 받는 자에게 촛불은 덤벼야 한다. 정규직 공무원에게는 고개 숙이면서 힘없는 계약직 사회복지사에게는 ‘민원’을 무기로 굴종을 요구하는 ‘못된 어르신’ 얼굴에도 촛불을 비추어야 한다.

콜택시 불러놓고 잠시를 못 참아 지나가는 택시 타고서 휴대폰 꺼버리는 사람도 촛불의 뜨거운 맛을 봐야 한다. 여차하면 ‘혐오시설’이라 집값 떨어진다며 데모하는 님비(NIMBY), 편의점이 있는 건물에 다른 편의점을 또 들이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건물주, 골목 상인들 한꺼번에 죽이는 대형마트··· 일일이 적기에는 지면이 너무 모자라다.

영화 ‘1987’에서 평범한 대학생 연희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라 항변했지만 결국 세상은 바뀌어 가지 않는가. 이제 ‘감옥의 관리’는 정부에 맡기고 촛불은 우리 모두의 밑바닥을 향해 다시 덤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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