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칼럼] 북한과 협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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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입력 2017-12-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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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칼럼]

 

[사진=김봉현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북한과 협상하기


협상학에서는 협상을 과학이라고 한다.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선의를 보인다거나, 또는 반대로 책상을 치면서 협상장을 나올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거나 하는 속설은 과학적이지 않다. 협상을 잘 하기 위해서는 협상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정확한 과학적 분석을 근거로 해야 한다.

협상의 정의에 따르면 협상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째는, 서로 합의에 이르려는 의사가 존재해야 하며 둘째, 쌍방향 대화를 통해야 하며 셋째,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협상의 여러 가지 기법들은 이 세 가지 단계에서 각 각 적용되는데 결국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 위함이다.

이 세 가지 단계를 관통하는 협상의 기초는 협상 당사자 상호간의 신뢰관계 형성이다.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이를 얻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상대방을 속이려고까지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합의를 해 보아야 서로 만족한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고, 합의를 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신뢰관계를 형성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서로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북한과의 협상이 바로 그러한 협상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결국 북한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까지 북한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은 협상의 첫 번째 단계인 협상의사 조차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 의사가 없는 북한에 대하여 아무리 대화를 하자고 한들 대화가 될 리가 없고 협상을 할 수가 없다. 혹자들은 이제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서 우리 정부 당국에게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정부도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는 것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과 믿음은 모두 협상학 측면에서 보면 논리적 모순이며 과학적이지 못하다. 북한은 대화의지가 없다.

대화 의지가 없는 북한에 대하여 의지를 불러 넣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중국은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maximum pressure를 주장하였다. 전자는 당근이고 후자는 채찍이다. 서로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관계 속에서 구사 가능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란과의 협상에서 후자로 재미를 보았다. 따라서 후자가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후자가 북한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 지도자의 체면이 구겨지면 체제 유지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어서 채찍은 절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월 12일 한국의 국제교류재단과 미국의 아틀랜틴 카운슬과 공동주최 포럼에서 토론회 기조연설 후 문답에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틸러슨 국무장관의 대화론은 백악관이 부정적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결국 사그러들게 되었다. 트럼프의 채찍론으로부터 한참 멀리 나간 발언이었다. 한국의 대화론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틸러슨 장관의 대화론은 당근도 아니고 채찍도 아니다.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당근이 되었든 채찍이 되었든,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 것은 핵과 미사일은 북한으로서는 협상의 대상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결국 북한과의 핵 협상은 협상의 대상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된다.

과거에 북한이 제네바 협상, 그리고 6자회담 협상에 응한 것은 합의를 하고 이를 준수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제네바 협상과 6자회담 협상 당시에 우리는 북한이 가지는 협상의 진정한 이익에 대하여 알지 못했으나 이제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 북한도 자신의 핵능력이 고도화 되면서 이제는 진실을 숨길 필요가 없게 되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협상의 대상으로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이를 협상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협상학에서는 협상의 전술적 측면에서 우선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약화시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높이라고 한다.

북한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 북한 핵과 미사일이 비록 실험단계에서 성공하였지만 실전 배치는 불가능하도록 국제적인 제재를 더욱 촘촘하게 단속해 나가고, 김정은의 통치수단을 약화시키는 모든 압력 수단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당장은 김정은이 지탱해 나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북한의 레버리지는 약해질 것이다.

거기에 덧 붙여서 우리의 레버리지를 높여 나가야 한다. 기존의 한미동맹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우리의 자체 방위능력을 대폭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킬체인, 사드 배치만이 아니라 전술핵에 대한 논의, 핵 잠수함 개발에 대한 논의 등은 우리의 레버리지를 높이는 수단이 될 것이다. 김정은 참수작전 검토에 대하여도 숨길 필요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험한 말도 북한의 레버리지를 약화시키고 우리의 레버리지를 강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험한 말들을 김정은이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도록 만들면 김정은은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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