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17] 노구교는 왜 마르크 폴로 다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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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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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마르코 폴로(Marco Polo) 다리-노구교

[사진 = 영정하와 노구교]

북경 시내 중심가에서 남서쪽 교외로 나가면 바닥을 드러낸 비교적 넓은 하천을 만나게 된다. 산서성(山西省)에서 흘러내려 몇 개의 물길과 합쳐지면서 북경 교외를 지나게 되는 이 하천의 이름은 영정하(永定河), 북경을 지난 이 하천은 천진에서 해하로 흘러들어 바다로 빠져나간다.
 

[사진 = 노구교 돌다리]

이 영정하를 가로지르는 돌다리 노구교(盧溝橋)는 북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길이도 가장 긴 석교로 8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일전쟁의 발발지로도 잘 알려진 이 다리는 또 하나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르코 폴로 다리’가 그 것이다. 쿠빌라이시대 몽골제국을 방문했던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당시 대칸이 사는 도시 대도, 즉 칸발릭(Khanbalik)으로 들어서면서 이 다리를 지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에는 멋있는 다리가 걸려 있다. 아마 세계에서도 드물게 보이는 아름다운 다리일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이처럼 멋진 다리로 표현했던 노구교는 옛날부터 연경 8경 가운데 하나로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북경의 관광 명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 바닥 드러낸 영정하

[사진 = 노구교]

노구교는 북경 시내에서 15Km정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다. 직접 찾아가 본 영정하는 이미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물이 말라버려 하얀 바닥을 드러내 놓고 있는 하천에는 모래를 파 올리는 크레인과 모래동산이 여기저기서 눈에 띠었다.

남북교통의 요충지로 나루터가 번창했던 영정하는 이제 북경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설작업에 필요한 모래의 주 공급처로 그 역할이 바뀌고 있었다. 노구교는 말라버린 영정하 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현재 노구교는 문화재적인 가치 이외에 다리 양편에 있는 두 마을 사람들이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도록 연결시켜주는 주된 역할을 하고 있었다.

▶ "가장 오래된 영궁(營宮) 석교(石橋)"
원래의 노구교는 다리 중앙에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북경당국은 돌로 만들어진 노구교의 남아 있는 부분을 다리 중앙에 옮겨놓고 그 주위에 새로운 시멘트 다리를 이어 현재의 다리 모양을 갖춰 놓았다. 원래의 노구교가 시작되는 부분에는 "1986년 11월에 일부 보수공사를 시작해 1987년 7월에 준공했다"고 적혀 있었다.

[사진 = 노구교 안내판]

금나라 세종은 1189년 6월, 정치․경제․군사상의 필요에 의해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에 석교를 놓기로 결정하고 3년 만인 1192년에 완공했다. 다리의 이름은 광리교로 정했으나 지금의 영정하를 노구하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다리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노구교로 바뀌었다. 다리 한편에는 노구교의 지난날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이 다리는 1192년 금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다리는 북경 근처에 존재하는 석조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궁 석교로 7백 년 전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유럽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길이 266.5m에 폭이 7.3m인 이 다리는 11개의 아치와 500여개의 사자 석상을 다리 난간에 가지고 있으며 이 사자석상은 금나라와 원, 명, 청대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졌다."

▶ 수를 알 수 없는 돌사자

[사진 = 노구교 돌사자상]

노구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사자 석상이다. 다리 양쪽에 서 있는 140여 개의 석조 기둥마다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사자의 몸에 또 다른 사자가 새겨져 있어 그 수를 헤아리기가 정말 어렵다. 사자의 가슴에도, 손에도, 발아래도 또 다른 사자가 새겨져 있는 데 그 크기나 표정이 모두 달라 돌 조각품의 정교함에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사진 = 노구교 안내 비석]

사자의 수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 둘 세어본 사람들은 한 번도 같은 수가 나오지 않아 대략 5백 개 전후의 사자가 있다고만 짐작할 뿐 정확히 몇 개의 사자가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사진 = '노구효월' 비석]

다리의 서쪽 끝에는 청나라의 건륭제가 직접 쓴 노구효월(盧溝曉月), 즉 ‘노구의 새벽 달’이라는 글귀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북경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서 달을 감상하고 소원을 빌었다는 사실을 이 비문이 알려주고 있었다.

▶ 중일전쟁 발발지 노구교
1937년 7월 7일, 한밤중에 노구교 근처에서 울린 총성이 노구교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렸다. 그 총성은 결과적으로 중일전쟁의 신호탄이 됐기 때문이었다. 노구교사건에 대한 과정은 일본 측과 중국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하지만 당시 중국 대륙을 공략하던 일본이 한해 전에 있었던 서안(西安)사건 이후 형성된 국공합작 분위기를 깨지 못해 탈출구를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중국 공격을 위한 핑계로 활용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서안사건이란 1936년 중국 동북군 사령관인 장학량(張學良)이 서안비행장에서 장개석 국민당 총통을 감금하고 항일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강요한 사건을 말한다.

▶ 일, 중국 공격의 빌미로 활용

[사진 = 노구교와 돌 사자상]

당시 노구교 왼쪽 마을에는 중국의 제 29군 일부가 주둔하고 있었다. 일본군 일부가 노구교 동쪽 황무지에서 야간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몇 발의 총성이 나더니 일본군 한 명이 행방불명됐다. 용변 중이었던 실종 일본군은 20여분 후에 돌아왔으나 일본군은 중국군으로부터 사격을 받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중국군을 공격했다.

다음날인 7월 8일 일본군은 노구교 옆 마을을 점령했다. 당시 10여 발의 사격이 일본군의 자작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군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중국 측의 양보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꼬투리를 찾고 있던 일본은 이 기회를 무산시키려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계속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군대를 증파해 7월 28일 북경과 천진에 대한 총공세를 시작했다.

▶ 국공합작 항일전선 구축의 계기
이를 계기로 양측의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면서 중일전쟁이 시작됐다. 나중에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며 8년간이나 계속된 이 전쟁으로 희생된 전쟁사망자는 1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로 많은 피해를 남겼다. 하지만 일본의 공격은 그 동안 주도권 다툼을 벌이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본격적인 국공합작에 나서서 항일 통일전선을 구축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차지할 기회까지 만들었으니 중국인들에게 노구교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구교는 중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거론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 됐다.

▶ 다리 소개 마르코폴로, 다리 이름에

[사진 = 마르코 폴로 언급 안내문]

이처럼 노구교는 중국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장소다. 또 8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다리 위를 지나간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다리에 마르코 폴로의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노구교 안내판에 언급된 대로 마르코 폴로를 통해 이 다리의 존재가 세계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 마르코 폴로 추정도]

또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보고 듣고 겪었다는 많은 얘기를 글로 남겨 유럽인들에게 동양세계 특히 중국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상인과 물자가 넘나드는 활발한 교역로인 노구교를 지나 칸이 사는 도시로 들어섰던 마르코 폴로는 당시 각각 딴 세계에 살고 있었던 동양과 서양을 하나로 연결시켜 교역의 시대를 열어가도록 기여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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