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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한·중 관계 출발선에 섰다… 외교史 '한 획' 그은 한중 정상회담

박은주 기자입력 : 2017-12-07 18:00수정 : 2017-12-08 08:23
1992년 노태우, 수교후 첫 국빈 방중 양국관계 서막 1998년 DJ 햇볕정책 내세워 한반도문제 中 지지 끌어내 2008년 관계 격상됐지만 G2 선언한 中 한미동맹에 딴지 2014년 朴정권서 FTA타결후 사드갈등으로 최악 냉각기 10·31 협의로 새출발 앞둬… 양자회담 깊은논의 기대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첫 정상회담을 가진 이래 최고 지도자 간 정상회담은 언제나 한·중 관계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한·중 관계사에서 '역대 최악의 암흑기'로 평가됐던 최근 2년여간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냉각기를 가까스로 넘은 양국은 다음 주 정상회담을 앞두고 새로운 관계 정립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양국 관계 역사에 변곡점이 됐던 '역대급' 한·중 정상회담을 되짚어봤다.  
 
◆1992년 첫 한·중 정상회담··· 노태우, 최초 국빈 방중
 
한국과 중국은 우리나라 해방 이후 47년 만인 1992년에 공식적으로 한·중 수교를 선언했다. 냉전 시기 대표적 적성 국가로 서로를 분류했던 두 나라의 수교는 한국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양국은 수교 교섭과정에서 양국 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양상쿤(楊尙昆)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사상 첫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중관계와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인식과 의견을 공유하며 본격적인 양국 관계의 시작을 열었다.

◆1998년, DJ의 햇볕정책으로 더욱 굳어진 한·중 관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의 초청으로 1998년 11월 중국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에서 김 전 대통령은 완전히 새로운 대북 정책인 '햇볕정책'을 내세워 중국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정상회담에서 장 전 주석은 햇볕정책을 가리켜 "한반도 평화안정은 중국이 추구하는 정책"이라고 호평하면서 "중국도 나름의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이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관계는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남북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마침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김영삼 정부 때의 ‘선린우호 관계’에서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

2008년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시대'를 선언하며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시점이다. 소위 '대국굴기'를 본격화한 중국이 미국을 향한 견제의 목소리를 내며 국제사회에서의 입지 구축에 나섰다.

이런 차원에서 한·중 관계도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그해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한·중 관계는 기존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최상급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이때를 기점으로 한·미동맹에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 외교부는 처음으로 한·미 동맹에 대한 공식 비판 입장을 내보이면서 한반도를 주변으로 동아시아 전역에서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한국도 점차 중국과 미국 양국 모두로부터 전에 없던 압박을 받으며 국제질서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최고점에서 최저로 추락···박근혜 정부 한·중 정상회담

한·중 관계가 가장 극적인 변화 폭을 보인 건 단연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꾸준히 우호적으로 유지되던 양국 관계는 박근혜 정권 당시 최고점을 찍고 사드로 인해 최악의 갈등 상황을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11월 베이징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하고 이듬해인 2015년 12월 20일에는 한·중 FTA가 공식 발효되는 성과를 올렸다.  

그해 7월 북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다음 해인 201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박 전 대통령을 초대하면서 한·중 관계는 절정에 올랐다.

미국 우방국 가운데 미국과 패권 경쟁하는 중국 열병식에 참석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었을 정도로 양국은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시 주석도 당시 별도 영접팀을 꾸려 박 전 대통령을 극진히 예우했다. 

이처럼 '역대 최상'으로 불리던 양국 관계는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4차 핵실험 후 북한이 한 달도 채 안 돼 장거리 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하자 한·미 양국은 작년 7월 사드 배치를 최종 결정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노골적인 '사드 보복'을 자행했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 달라'는 일관된 주장을 하며 한국을 향해 비공식적으로, 그러나 전면적인 '경제 보복'을 개시했다.

◆문 대통령 첫 방중···새로운 출발선에 선 한·중 관계

한·중 양국에 상처만 남겼던 사드 갈등은 문재인 정부와 시진핑 정부가 이른바 '10·31 협의'를 발표하면서 봉합 국면을 맞았다. 

조만간 있을 세 번째 한·중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사드 파도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두 나라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성숙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은 국외에서 이뤄진 다자회담이었으나 이번 정상회담은 양자 회담이라는 점에서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드 배치로 인해 1년 4개월의 냉각기를 거친 이후 양국이 새로운 시점을 맞아 전략적 협력 동반과 경제 협력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측면에서 이번 만남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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