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정부에 손 벌리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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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입력 2017-11-2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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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선 기자

지난 15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가 결정됐던 날, 주요대학 총장들이 모인 행사가 있어 들러봤다.

그 자리에서 나온 주된 내용은 정부가 사립대 지원을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

사립대와 국립대 졸업생이 졸업한 후에 나라에 기여하는 바는 다를 것이 없는데 왜 국립대에 더 큰 규모의 지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언급도 있었다.

서울대에만 한 해 4000억원의 막대한 예산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가 나왔고, KAIST 등 과학기술대학들에만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하는 데 대해서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학 실험실이 과학고보다 실험 여건이 좋지 않아 자괴감을 느낀다고도 했고, 사립대 실험실 기기 등에는 지원이 전무하다고도 했다.

정부가 등록금을 8년째 동결시켜 놓은 데 대한 볼멘소리도 컸다.

전체 대학의 80%가 넘는 사립대가 기존에는 민간자원을 통해 졸업생들을 전문가로 배출해 국가 발전에 기여했으니 이 같은 역할을 정부가 인정해주고 이제는 그 빚을 좀 갚으라는 노골적인 얘기까지 나왔다.

해방 이후 국가는 강성해졌지만 사학은 피폐해졌다며 빚쟁이론을 꺼냈다.

이번 포럼은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 개편 계획 발표를 앞두고 사립대 지원 규모를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던 듯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면서 다음 날로 예정됐던 재정지원 개편 계획 발표는 미뤄졌다.

이번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 개편 요지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예산 규모를 늘리고 이 예산의 분배를 대학 평가를 통해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기존에는 각 사업별 계획을 심사해 지원해왔지만, 이와는 달리 목적 사업이 아닌 일반 재정지원 규모를 늘려 이를 따로 사업계획 평가를 하지 않고 기존의 대학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대학평가의 경우 재정지원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는 않고 저조한 등급을 받을 경우 재정지원제한 대학을 선정하는 데에만 영향을 줬을 뿐이지만 이제는 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게 된다.

또 기존에는 대학 평가에 따라 의무 정원 감축 비율이 정해졌지만 개편을 통해 등급을 잘 받은 대학들은 의무적으로 정원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정원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대학의 비율은 절반이 넘어설 전망이다.

교육부는 1주기 대학 구조개혁에서 정원 감축이 목표보다 초과 달성돼 이같이 보다 느슨한 정원 감축 계획을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1주기 대학 구조개혁에서 감축 정원은 5만6000명으로 목표 4만명을 초과한 감축분 1만6000명과 함께 자연 감소분을 감안해 감축분 2만명을 목표로 하면 감축 목표 5만명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2주기 구조개혁에서는 대학평가에 따른 정원 감축 의무는 완화됐지만 재정 지원과의 연계가 커지게 되면서 이전에 정원 감축 때문에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대학들이 재정 지원에 더 얽매이게 됐다.

열악한 대학들의 경우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여전히 정원감축 규모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2주기 대학 평가가 이름은 ‘기본역량진단’으로 바뀐다고 한다.

점수를 매긴다는 ‘평가’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이름으로 바뀐 듯하지만 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면서 더 사나운 평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사학혁신추진단을 운영하면서 출범 2개월 만에 두 대학에 처분을 내리면서 대학들이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추진단은 50개가 넘는 사학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

비리대학으로 꼽힌 대학은 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2주기 평가는 또 권역별로 평가가 이뤄지면서 오히려 수도권 학교들이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대학들이 ‘미래’는 제쳐두고 당장의 재정지원을 위해 혈안이 될 것으로 예상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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