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동몽선습과 격몽요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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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08-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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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몽선습과 격몽요결

몽골인들은 몽고(蒙古)라는 한자 표기를 싫어한다. 뜻이 좋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옥편을 찾아 보면 몽(蒙)은 사리에 어둡다, 어리석다, 어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거나 계몽(啓蒙)을 떠올리면 된다. 칭기즈칸이 세운 대제국을 애써 멸시하는 듯한 이름짓기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멍구’가 아니라 ‘몽골(Mongol)’이라고 현지인들은 힘주어 발음한다.
그런데 몽(蒙)에는 백년대계의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주역의 건(乾), 곤(坤), 둔(屯) 다음 네번째 괘가 몽(蒙)이다. 조선의 유학자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童蒙先習)’과 이이가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몽(蒙)’의 쓰임을 알 수 있다.
주역학자 서대원씨에 따르면 몽(蒙)은 어린이의 가르침을 뜻한다. 동몽(童蒙)은 주역에서 최고의 경지로 여기는 교육형태이자, 순수한 도(道)의 경지이며, 최고의 인격을 상징한다. 모두가 추구하는 목표이지만,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동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구한다(匪我求童蒙 童蒙求我)’고 했다.
동몽의 경지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다다를 수 없다는 말이다. 태어날 때의 순수함을 유지하면서 자연과 합일(合一)을 이뤄야 비로소 가능하다. 순수함을 잃으면, 만물의 어머니이자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대자연(大自然)이 더는 일러주지 않는다(瀆則不告)는 것이다. 아마도 예수가 “어린아이처럼 되기를 힘써라”고 한 본뜻이 이러한 순전함을 비유했을 터이다.
이러한 몽(蒙)도 단계가 있다. 동몽(童蒙)이 가장 높은 경지라면, 발몽(發蒙)은 현실적이다. 자연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의 가르침이다. 즉, 출세와 입신양명을 위한 공부를 의미한다. 오늘날로 보면 법조인이나 행정관료가 되는 길이다. 인생에서의 성공을 위한 공부이다.
그런데 주역은 발몽이 그저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用說桎梏)이라고 폄하한다. 게다가 이런 공부는 끝까지 길(吉)하지 못하고, 좋은 시절이 지나면 곧바로 어렵고 곤란해진다(吝)고 경고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며 출세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래서 토익에 매달리고 스펙을 쌓고 있지만, 이런 공부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본원적인 고뇌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욕심은 끝이 없는데, 끝없는 욕구를 채워줄 항아리는 본디 밑이 터져 있는 것이다.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셈이다.
발몽(發蒙) 다음은 포몽(包蒙)이다. 포용과 화합의 공부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출세에 눈이 어두워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보다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우선하는 공부가 그나마 도(道)에 가까운 것이다.
포몽(包蒙) 다음은 곤몽(困蒙)이다. 깨우치기도 어렵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억지로 하는 공부이다. 화가나 음악가가 꿈인데 의사나 판검사를 향해 내몰리는 교육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공부는 당연히 고난의 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곤몽(困蒙)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목적도 뚜렷하지 않지만, 당장 써먹을 데도 없지만, 순수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매진하는 동몽(童蒙)이 길(吉)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朝聞道 夕死可矣)”는 경지의 공부다.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이 등선(登仙)이든, 열반(涅槃)이든, 천국이든.
곤몽(困蒙) 다음은 격몽(擊蒙)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의 그 격몽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보면 초등학교 의무교육쯤이다. 목표는 어린이들이 장차 도적이 되지 않도록 정신세계를 맑게 닦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기초 교육인 셈이다.
주역은 이렇게 어린이의 교육을 매우 중하게 다루고 있다. 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이지만, 개인에게는 평생지계가 아닌가. 그래서 동몽-발몽-포몽-곤몽-격몽의 다섯 부류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오늘날의 교육은 어떠한가. 평준화다, 수월성이다 서로 드잡이를 하지만, 결국 동몽(童蒙)보다는 입신양명을 위한 발몽(發蒙)에 매진하지 않는가. 문제는 발몽으로 출세하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일찍이 고시에 합격해 권력의 주변을 맴돌던 김기춘씨가 그 전형이지 싶다. 주역의 ‘발몽 이용형인(發蒙 利用刑人)’에 꼭 맞는다. 형인(刑人)은 형벌을 집행하는 사람이란 뜻이니 오늘날의 법조인, 그중에서도 검사쯤이다. 검사로서, 정치인으로서 한때 잘나갔지만 그 끝은 결국 쇠고랑 신세가 되지 않았나.
괜히 동몽선습, 격몽요결이 있는 게 아니다. 동몽선습은 효행을 기초로 오륜(五倫)을 가르치며,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배양한다. 격몽요결은 입지(立志)에서 처세(處世)까지 10장으로 돼 있다. 마지막 처세(處世)는 “벼슬을 위해 학문하지 말고, 도(道)를 행할 수 없으면 벼슬에서 물러나라”고 가르친다. 새 정부의 장·차관, 특히 김상곤 교육부장관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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