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중국의 총리는 1.5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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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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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총리는 서열 2~3위…평균임기 약 10년

  • 총서기가 '오너'라면 총리는 'CEO'…조화와 균형 유지하는게 전통

  • 문재인 대통령 시대 개막…우리나라 대통령-총리 최고의 '팀플' 선보이길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1998년 5월, 상하이 총영사관 사무실에서 필자는 장쑤(江蘇)성 해변가의 윤택한 지방 서양(射陽)현 서기(우리의 군수에 해당)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와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싶은데 가급적이면 첨단산업과 국제무역이 발달한 도시지역을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게 전화의 요지였다.

서양현이 개혁·개방이 앞선 중국 연해지역에 위치해 있어 풍족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군(郡)에 해당되는 중국의 일개 현급 지방정부에 우리의 광역도시나 중대형 도시를 소개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벽걸이 지도를 바라보며 서양현과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전북 고창군이 적합할 것 같은 판단이 들어 추천했다.

그러자 서양현의 서기는 곧바로 고창군의 상황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특산물인 수박·땅콩·장어 따위의 특산물에서부터 필자가 알고 있는 고창군의 모든 장점을 있는 대로 나열해 보았으나 상대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고창군은 현대 우리나라 대표적 시인(1)*을 낳은 곳이며, 중국의 두보나 이태백 같은 위대한 시인의 고향이라고 해도 상대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서양현의 입맛에 맞추자고 고창군에 없는 첨단공업기지를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었다.

'이거 안 되겠구나'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창군은 국무총리를 두 명이나 배출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랬더니 상대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지는 게 아닌가. "아니, 한 군에서 총리가 두 명씩이나 나오다니, 그게 정말입니까?"라고 몇 번씩 되물으며 고창군과의 자매결연이 조속한 시일 안에 성사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거의 애원조로 부탁했다. 아마 서양현 서기는 우리네 역대 총리가 자기네처럼 한 자릿수 미만이고 한 번 총리 자리에 앉으면 10년 정도 하는 줄 알았나 보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한국의 군과 중국의 현으로는 최초의 자매지간이 된 고창군과 서양현 간엔 목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거기에는 두 분의 재임기간을 합해 보아도 2년 6개월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총리를 역임하셨던 김상협·진의종 국무총리(2)*, 두 분의 '음덕'은 물론, 그만큼 역동적인 조국의 제도와 현실의 특수성도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제1직위라면 제2직위는 국무원 총리다. 중국 건국 이후 국무원 총리를 맡은 자는 대체적으로 총서기(당주석)에 이어 권력서열 2~3위를 유지해왔다. 지금의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화궈펑(華國鋒), 자오쯔양(趙紫陽),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원자바오(溫家寶)에 이은 중국 제7대 총리이다. 건국한 지 70년이 다 되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일곱 번째의 총리가 재임하고 있으니 중국 총리의 평균임기는 약 10년이다.

옛날 중국에서 점포의 주인은 '동가경리(東家經理)', 경영인은 '서가경리(西家經理)'라고 했다. 한 지붕 밑에서 주인은 동쪽 방에, 경영인은 서쪽 방에 기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날 '중국의 CEO' 리커창 총리가 집무하는 국무원 청사도 중국의 권력 최고사령부 중난하이(中南海)의 호수 서쪽에 있다. 호수 맞은편 동쪽에는 현대 '중국의 오너' 격인 중국공산당 중앙당사가 있다. 호수 주변에는 시진핑 총서기,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의 관저들이 있다. 이 관저들은 규모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정치국 상무위원의 회의실 탁자는 장방형이 아니라 원형이다. 즉, 상석도 말석도 불분명한 원탁이다. 그 원탁의 모양만큼 정치국 상무위원 7인의 권한은 중국공산당 당헌상 평등한 집단지도체제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총리의 지위와 권한은 얼마나 강하고 높을까?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헌법상 임기가 5년(3)*으로 보장된 중국 총리는 내각책임제 국가의 총리보다는 못하지만 대통령제 하의 총리보다는 높고 강력하다.

집단지도체제의 오랜 전통에 따라 중국의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는 딱 부러진 상명하복의 수직서열 관계가 아니다. 중국의 총리는 2인자라기보다는 1.5인자라고나 할까? 중국의 주석과 총리는 기업의 오너와 CEO와 같은 역할분담과 상호보완의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중국의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를 모순과 대립의 권력투쟁적 접근 방법으로 비틀어 보려고 한다. 이러한 시각은 중국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상 개국 초기 등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황제와 재상은 일방적 상하 관계가 아니었다. 양자는 조화와 균형을 유지해 왔다. 재상의 본분은 황제와 권력의 칼자루를 다투지 않는 것이다. 재상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한 예는 역성혁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즉, 오너(황제·주석)의 후계자 따로, 청지기(재상·총리)의 후임자 따로의 패턴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태공, 관중, 제갈공명 등 2인자들은 각각 주문왕, 제환공, 유비 등 1인자들보다 세세대대로 숭앙받아 왔다. 그렇듯 마오쩌둥 초대 주석보다는 저우언라이 초대 총리가, 장쩌민 주석보다는 주룽지 총리가, 후진타오 주석보다는 원자바오 총리가 중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중국 역대 국무원 총리 열람표



현직 리커창 총리가 중국 역대 총리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시진핑 주석의 1인 카리스마가 워낙 빛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국무총리는 어떠한가. 정국의 안정과 행정의 능률을 기하기 위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그의 의사를 받들어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국무총리는 국무위원 임면 제청권과 대통령 궐위 시 권한대행권 등을 보유함으로써 중국의 총리도 갖지 못한 강력한 권한과 지위가 있다.

5월 10일,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개막했다. 부디 문 대통령과 신임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총리 팀으로 청사에 길이 빛나길 기원한다.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주석:

(1)* 미당 서정주(1915~2000)의 고향, 고창군 부안면
(2)*김상협 국무총리(재임기간 1982.9.21~1983.10.14), 진의종 국무총리 (1983.10.15~1985.2.18)
(3)*중국의 총리와 부총리, 국무위원(부부총리)의 임기는 헌법상 5년, 1회 연임 가능하고 각부 부장(장관)은 5년 연임제한이 없다.(중국헌법 제8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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