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교수의 차이나 아카데미] 중국을 바로보는 네 가지 접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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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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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데올로기적 편견, 유교식접근, 일본식 접근, 미국등 서구시각에서 벗어나야

  • 시공간을 아우르는 접근, 거시적 접근, 미시적 접근, 체험식 접근이 필요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부끄러웠다. 중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 필자는 그동안 우리가 알아왔던 지식과 책이나 매체, 특히 서양과 일본의 서적에서 얻은 정보가 얼마나 실상과는 동떨어졌으며, 이것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버리기로, 비워내기로 했다. 뇌속 실핏줄 줄기줄기에 오염된 인식을 씻어내고, 뼛속 깊이 잘못 각인된 도그마를 발라내기 위해 새롭고 참된 진실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왁자한 도시의 저잣거리, 호젓한 산 속의 오솔길, 명산대천과 명승고적, 이름 모를 언덕과 시내, 사막과 고원 어느 곳 하나 가릴 것 없이, 필자는 광활한 대륙의 나라가 좁다고 느껴질 때까지 방랑자처럼 떠돌았다.

2000년 어느 여름날 오후, 필자의 발길은 베이징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저 북경원인(北京猿人)의 보금자리 저우커우뎬(周口店)에 닿았다. 인류학자에 의해 50만년 전 흑인종에서 분리진화된 몽골인종이며 몸에 덮여 있던 털이 차츰 사라진 것으로 밝혀진 북경원인, 원래의 인간 원인(猿人)의 두개골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일체의 선입관과 편견을 배제한 ‘원형을 추구하는 인간’ 이라는 의미의 ‘북경원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50만년 전 순결한 원인의 시원(始原)성을 바탕으로 파노라마처럼 서서히 펼쳐지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투시해야 한다는 것을. 

1992년 한·중수교 이전, 우리는 동쪽만 바라보고 살았다. 서쪽은 벽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서해 건너의 중국을 알기 위해 우리는 주로 동해 건너 일본을 통해서,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통해서 중국을 바라본 게 사실이다. 

올해로 한·중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25주년이 됐다. 서쪽 벽을 허물고 오랜 이웃과 다시 교류한 지 사반세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너무나 모른다. 하루하루의 날씨를 기상대의 예보에 의존하는 것처럼, 목전의 현상만으로 이 노대국(老大國)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가.

그러지 않으면 동일한 유교문화권이라는 막연한 친근감으로 중국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과거 냉전시대의 단절로 인해 우리와 차이가 많은 중국을 신비한 동방의 사회주의국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쯤으로 치부해왔다.

필자는 중국을 잘못 보게 만드는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편견,  공자(孔子)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유교식 접근, 중국의 진상을 왜곡 오도하는 일본식 접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이분법적 접근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중국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아는 천부적 심안을 가진 자는 제일 가까운 이웃에서 오랜 세월 역사와 문화를 공유해온 한국인이어야 할 텐데, 왜 우리는 맨눈으로도 잘 보이는 중국을 ‘마르크스의 붉은 선글라스’, ‘공자의 졸보기’, ‘일본의 난시 렌즈’, 그리고 ‘미국의 콘택트 렌즈’를 쓰고 보려고만 할까.

세계 제일의 천부적 중국'통(通)' 한국인이 이 따위 안경들을 쓰고 중국을 보니까 중국'치(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국인은 맨눈으로도 중국이 잘 보이는데 더욱더 중국을 확실히 꿰뚫어보기 위해 필자는 다음 네 가지 광학기기를 갖출 것을 제안한다. 

첫째, 시공의 망원경이다. 시간(역사)과 공간(지리)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방법으로 중국을 보라. 즉, 시간과 공간을 별개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중국을 역사와 지리의 십자가 한가운데 놓고 살펴보라. 모호한 노대국의 실체가 차츰 뚜렷해질 것이다.

둘째, 거시의 '드론렌즈'다. 큰 바닷새 앨버트로스가 창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거시적 시야로 세계와 동북아, 중국의 시공을 조감해보라. 숨겨진 사실을 새삼스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셋째, 미시의 현미경이다. 유럽연합(EU)보다 2.5배나 큰 중국에 대해 ‘중국은 어떠하다’고 뭉뚱그려 단정짓지 말라. 중국의 지역별·분야별 세밀한 특징을 화폭에 점묘법처럼 찍어나가다 보면 중국이라는 전체가 보일 것이다. 

넷째, 체험의 내시경이다. 존재는 실제 체험을 통해 파악된다. 소금이 짜다는 사실을 알려면 실제로 맛을 보는 수밖에 없다. 중국에 관한 올바른 이해는 무슨 주의니 사상이니 하는 관념에 현실을 억지로 짜맞추려 하기보다는 실제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즉, 실제 체험을 통한 경험론과 귀납법이 중국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최선의 접근방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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