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양역우(以羊易牛)와 새로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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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1-0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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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석 교수 "필부의 책임" 강조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3일 방송된 EBS 다큐 ‘제자백가-절망을 이기는 철학’ 2편에서 이양역우 고사가 나와 유심히 시청했다.

이양역우(以羊易牛)는 맹자의 양혜왕 편에 나오는 고사다. 왕이 어느 날 시종이 흔종(釁鐘 : 새로 종을 주조할 때 피를 바르는 희생제)에 사용되는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다, 소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소 대신 양(羊)을 희생하도록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킨다는 뜻으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는 맹자 철학의 핵심인 측은지심(惻隱之心)를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는 것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배웠다. 철학자들은 양혜왕이 소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람의 본성이며 이것이 측은지심이라고 분석했다.

맹자는 나아가 이런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라고 했다. 맹자는 그러면서 혁명이란 이러한 측은지심이 없는 군주를 없애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하나라의 걸(桀)왕과 상나라의 주(紂)왕이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걸주를 중국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꼽았다.

맹자는 양혜왕이 어떻게 백성들이 임금을 죽일 수 있느냐고 묻자, ‘일개 필부인 주를 죽인 것이지 군주를 죽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즉 왕이 왕 노릇을 하지 못하면 일개 필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맹자의 이러한 가르침은 왕은 백성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맹자에 앞서 공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서(恕)라고 전했다. 논어 위령공편에는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죽을 때까지 지킬 한마디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공자는 ‘서(恕)’라고 간결하게 답했다.

논어는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을 부연하고 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와 맹자의 서와 측은지심이 이 시대에 다시 주목받는 것은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등의 어수선한 정국 때문이다. ‘불통’에 지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새로 들어설 리더십의 중심에 측은지심과 서가 위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리더가 될 누군가가 갖춰나갈 덕목이지만, 우리 국민들도 새로운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도가철학의 대가인 최진석 서강대 교수는 광주일보 2일자 ‘최진석의 老莊的 생각’ 칼럼을 통해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을 강조했다. 천하의 흥망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 칼럼에서 “(중국 명말과 청초까지 활동한)고염무라는 사상가는 나라가 망하는 것과 천하가 망하는 것을 구분하여 말한다. 그것을 우리 사정에 맞춰 이해하면 정권이 망하는 것과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분한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정권이 망하는 것은 그 정권을 맡았던 엘리트들의 책임이지만,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면 이는 보통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다”고 일갈했다.

최 교수는 이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유형이 사회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고, 오직 청와대에서만 벌어진 사건이었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문제가 엄중한 이유는 필부들이 살고 있는 사회 도처 어디서나 이런 유형의 일들이 언제나 목도될 수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4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현재 위기를 촉발한 건 박근혜-최순실 일당이나 이 일로 국가를 지탱하고 있던 공통의 가치관이나 법 질서마저 흔들린다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했던 구성원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거 아닌가. 무릇 정치는 그 사회의 얼굴이다. 듣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공적 시스템의 사유화는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코 박 대통령의 잘못을 묵인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비난하는 데서 멈추면 악순환은 자칫 반복될지 모른다. 일상 속 ‘박근혜-최순실’과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처(處處)에 가르침이 넘쳐난다. 하루 해가 너무 짧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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