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큰 아품 ... 6.25와 같은 전쟁 다시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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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6-0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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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충일을 맞아 6.25참전용사 정태조 옹과 인터뷰

        [정태조 지회장]

북한 괴뢰집단 일방적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
수도고지전투 아군 80여명 전사 평생 잊지못해
세계적평화공원 건립...안보교육장 만드는게 꿈


아주경제 윤소 기자 = “제 군번은 0757491 입니다"

올해 85세인 정태조 지회장은 아직도 자신의 군번을 외울 정도로 정정하다. 정 지회장은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세종시 지회를 맡고 있다. 1948년 11월 10일 방위군에 입대한 그는 1950년에 발발한 ‘6.25사변’을 겪고 1955년 6월 21일 육군 하사로 전역했다. 국민훈장 동백상 및 화랑무궁훈장 등을 수상한 그를 현충일인 지난 6일 사무실에서 만났다.

-6.25 이전에도 공비 소탕 작전에 참가했다는 데.
1949년 7월 방위군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에 나섰다. 포위망을 좁혀가자 적군은 발악하듯 총격을 가했다. '타타탕'소리가 들리면서 내 옆에 있던 방위군 동료가 쓰러졌다. 잠시 엎드렸다 다시 방공호를 향해 진격하는 순간 적군의 2차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엔 현역 병사가 사망했다. ‘나도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전진! 앞으로!’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무조건 돌진하면서 총 공세를 가하자 공비들이 도주했다. 우리가 총격을 가하자 일시에 7~8명이 쓰러졌다. 그날의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6.25 전쟁에서 겪었던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1년 2월에 현역으로 편입돼 수도사단 26연대 2대대 1중대 소속으로 강원도 백마고지 근처 수도고지에서 주둔했다. 어느날 해질 무렵 적군이 쏜 포탄 4~5발이 우리 진지로 떨어졌다. 포격전에 이어 육박전이 벌어졌다. 국군 200여명 중 80여명 정도가 전사했지만 적군 300여명 중 2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당시 왼쪽 어깨에 파편을 맞아 요즘도 날이 궃으면 꽤나 저리고 쑤신다. 그 와중에 살아 남았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 남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은.
전쟁 당시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 ‘개미고개’에서 미 육군 24사단 21연대 3대대 667명의 미군 중 428명이 산화했다. 세종시는 오는 7월 11일 제 10회 개미고개 6.25격전지 추모제를 거행 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곳 개미고지에 ‘세계적 평화공원’이나 ‘세계적 안보교육장’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자유와 평화는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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