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최고의 보양재, ‘둥어(東阿) 어자오(阿膠)’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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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3-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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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자오는 식용 방법이 다양하다. 베이징 식 전통방식은 어자오에 붉은 대추, 호두, 검은깨, 얼음 설탕을 넣고 푹 고아 반고체 형태인 고원고(固元膏)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사진=둥어어자오유한공사 제공]


인민화보 리후이펑(李慧鵬) 기자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둥어(東阿)어자오(阿膠)’는 인삼, 녹용과 더불어 ‘보양 3보(滋補三寶)’라고 불리는 귀중한 중의약 보양재다. 중국 최초의 의약 전문서적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어자오를 보양의 상등품으로 분류했고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보혈(補血)의 명약’이라고 극찬했다.

<신농본초경> 기록에 따르면 둥어 어자오는 산둥(山東)성 둥어(東阿)현에서 생산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드시 둥어 현지에 있는 우물물을 사용해 만들어야 진정한 어자오라고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전통기법의 전승자 친위펑

1974년 10월, 당시 16살이었던 농민 친위펑(秦玉峰)은 둥어어자오 공장의 임시직원으로 취직했다. 이곳은 1952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국영 어자오 생산공장이었다. 2000여 년 전부터 둥어어자오는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생산됐다. 당시 실습생에 불과했던 친위펑은 어자오를 당나귀 가죽을 고아서 만든다는 정도만 알았다. 과거 어자오가 ‘구조공교(九朝貢膠, 황실 진상품)’라고 불렸다는 것도, 지방마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 장쑤(江苏)성, 저장(浙江)성, 상하이(上海) 지역에서는 여피교(驢皮膠)로, 후난(湖南)성 일대에서는 여교(驢膠)라고 각각 불렀고 산둥성 둥어에서 생산되는 것만 어자오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친위펑의 스승은 류쉬샹(劉緒香)으로 나이 많은 약사였다. 친위펑은 스승에게 가죽 불리기, 자르기, 가공, 삶기, 농축, 응고, 건조, 문질러내기 등 어자오 제작 전과정을 배웠다. 기법 한 과정을 배우는데 짧게는 4-5개월, 길게는 1년이 걸렸다.

그는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침내 스승은 친위펑에게 제작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친위펑은 자연스럽게 가경(嘉慶) 5년(AD 1800년)에 설립된 둥어어자오 제조판매장의 제8대 후계자가 됐다. 동시에 완벽한 전승 기록을 가진 제8대 어자오 계승자로 선정됐다.
 

친위펑(오른쪽)이 전문가들과 어자오의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사진=둥어어자오유한공사 제공]


어자오의 산업사슬화에 성공

임시직원에서 시작한 친위펑은 실습생, 반장, 과장, 공장장 보좌관, 부총경리, 상무 부총경리를 거쳐 지금은 둥어어자오 유한공사의 총재로 재직한지 10년이 다 돼 간다.

그는 ‘문화 마케팅’과 ‘가치 회귀’ 철학을 제시했다. 첫째, 어자오 약효 변천사와 보양양생사를 발굴정리해 <아교박안경기(阿膠拍案驚奇)>를 출간했다. 또 <견환전(甄嬛傳)> 같은 문학작품과 인기드라마 등을 통해 소비자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회사가 제조출시한 어자오 건강보조식품 판매량은 크게 늘어났다.

둘째, 2006년부터 둥어어자오 유한공사는 전문팀을 구성해 어자오 용법을 수집, 발굴 및 정리했다. 어자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물론 역대 의학자, 약학자, 소비자들의 어자오에 대한 평가도 정리했다. 이를 통해 어자오의 의약 처방과 진료 일지를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중의학 내과, 외과, 미용, 양생, 보건 분야의 이름난 처방 3200여 개, 액상 내복약 200여 개, 식이요법 200여 개를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업의 목적은 어자오를 왜 어자오라고 부르는지, 도대체 어떤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 제조자가 먼저 분명히 알고 이를 소비자에게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셋째, 100년 동안 중단된 ‘구조공교’ 제작 기법을 부활시켰다. 2007년부터 해마다 동지가 되면 친위펑과 노련한 기술자 8명은 둥어현 우물에서 ‘지음지수(至陰之水)’를 길어다 ‘구조공교’를 만들고 있다. 물을 금솥에 담고 뽕나무 장작에 불을 붙인 다음 국가기밀인 특수기법으로 9일 밤낮 동안 순수 수작업으로 99개 공정을 거쳐 완성해 낸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원자재인 나귀 가죽의 품질을 유지하고 원자재 부족을 예방하기 위해 둥어어자오는 산업사슬의 업스트림을 발전시켰다. 2002년 신장(新疆), 간쑤(甘肅), 윈난(雲南), 랴오닝(遼寧), 산둥 등지에 나귀 가죽 원료기지 13개를 설립해 기업의 나귀 가죽 자원을 확보했다. 이는 현지 농촌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농민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또한 둥어어자오는 나귀 고기, 나귀 우유, 나귀 피, 태반 등을 연구해 제품으로 만들었다. 이는 사육 농가의 수익을 증대시켰을 뿐 아니라 회사의 신 사업에도 길을 터주어 어자오를 중심으로 한 나귀 산업사슬을 발전시켰다.
 

어자오 제작공법 중 말리기[사진=둥어어자오유한공사 제공]


전통 속에서 혁신을 추구

1980년대부터 전통 수작업이 점점 규모화 생산을 할 수 있는 생산라인식 작업방식으로전환했다. 어자오 제조업 종사자들이 전통과 현대 공법을 융합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전통 기법에 정통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때문에 전통 기법으로 어자오를 만들어온 친위펑은 그 시대 종사자들 가운데 두각을 나타냈고 뛰어난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친위펑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는 둥어어자오에는 현대적인 요소가 필요하지만 전통을 잃어버리면 근본을 상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어자오 기법 전승에 대해 고민하면서 제작 기법, 상업 마인드, 문화 수준을 고루 갖춘 계승자를 찾았다.

그에게는 저우샹산(周祥山)이라는 제자가 있다. 현재 그는 둥어어자오 유한공사의 부총재다. 1974년 생인 저우샹산은 생물화공학 박사, 교수, 박사 지도교수다. 연구 방향은 미생물 제약, 분자생물학, 단백질 분리정화, 중의약 분자 평가다. 그의 연구 방향은 바이오 의약기업과 더 잘 맞을 것 같지만 그는 어자오를 선택했고 친위펑의 제자가 됐다.

친위펑은 “내가 그를 계승자로 받아들인 것은 어자오의 전승과 혁신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제 제도와 지도교사 제도를 채택했고 사제 계약도 체결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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