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OK시골] 하찮은 풀을 야생화로 가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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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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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흙을 한차 받았다. 옆집 노인네가 좋은 흙이라 하여 덩달아 주문했다. 충동구매였다. 좁은 마당에 계획 없이 흙을 부어 놓으니 거추장스러웠다. 한가롭게 흙장난을 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이럴 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 포크레인이다.

“마당에 얇게 펴 주시고요. 이렇게 싹이 올라온 것들은 작년에 어렵게 구해 심은 꽃나무들이니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포크레인 기사에게 부탁을 하고 볼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아주 깔끔하게 ‘나라시’(목욕탕에서는 때를 미는 것을 말하고 건축 현장에서는 평평하게 고르는 것을 말하는 건축현장 용어. 일본말이 건축현장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데 일본 식민지 잔재다)가 돼 있었다.

일을 시켜보면 포크레인은 무섭다. 흙 한차 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잔디는 아예 묻어 버렸고 그 주변으로 몇 년 정성을 들였던 야생화와 허브, 꽃나무들도 생매장을 시켜 놓았다.

‘나라시’만 생각한 포크레인 기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꽃이 심어져 있던 울퉁불퉁한 밭도 밀어 놓았다. 그 속에는 반 키쯤 되는 라일락도 한 포기 있었고 조팝나무며 매발톱꽃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목이 잘려졌거나 생매장 돼 있었다. 이미 끝난 상황이라 뭐라 해봐야 서로 기분 상할 것이라 속을 달랬다. 그래도 속상해 “여기 이런 것들은 꽃나무인데 뭉개 버리면 어떻게 해요.” 궁시렁 거리자니 돌아온 답은 “그것들 다 풀 아니에요?”다.

포크레인 기사 입장에서 보면 정원에 삐죽삐죽 올라오는 것들은 잡초일 뿐이다. 하찮은 풀도 아끼면 야생화가 되고 훌륭한 화초가 된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충주에서 야생화 농장을 하는 이가 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젊은 나이에 귀농해 야생화 농사를 짓고 있자니 동네 어르신들은 ‘잡초 농사를 짓는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했다. 곡식을 심어야 하는데 밭둑이나 산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갖다 정성을 드리고 있으니 미쳤다고 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곳이 지금은 아담한 야생화식물원이 됐다.

풀을 두고 잡초로 보는 사람도 있고 꽃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상대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하찮은 풀을 야생화로 가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볼 때 행복하다. 

김경래 OK시골 대표 / www.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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