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 불난 가슴에 부채질한 입·입·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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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0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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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홍가혜 문창극[사진=아주경제DB]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살면서 잠잠한 날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2014년 상반기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대한민국의 불치병인 안전불감증의 결과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재난' 같은 사건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났고, 정치권은 손바닥 뒤집듯 인사를 갈아치우며 인재난을 스스로 까발렸다. 지친 우리를 뜨겁게 위로해 주길 기도했던 ‘2014 브라질 월드컵-한국편’은 유독 빨리 끝났다. 힘빠진 우리의 넋까지 빠져나가게 했던 말․말․말을 모았다. 노약자와 임산부는 뒤로가기 버튼을 클릭하길 권장한다. 모아 놓고 보니 더 가관인 탓이다.

‣“1차 피해는 GS칼텍스고, 2차 피해는 어민들”(윤진숙)

지난 1월 31일 여수시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 사고로 인근 어민은 날벼락을 맞았다. 주민은 설도 제대로 쇠지 못한 채 방제 작업에 매달렸지만 윤진숙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사고 발생 이후 초기 은폐를 시도한 GS칼텍스 걱정이 먼저였다. 윤 장관은 2월 5일 기름 유출 사고 관련 당정협의에서 “1차 피해는 GS칼텍스, 2차 피해는 어민”이라고 말해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의 집중적 질타를 받았다.

윤 장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 과정에서 억울하다는 듯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식의 답변과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수차례 웃음을 지어 보여 까맣게 타들어 간 어민의 마음에 화살을 쏘아댔다.

뿐만이 아니다. 윤 장관은 여수 방문 당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라는 부적절한 발언과 함께 코를 가렸다. 이후 기름 냄새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 아니라 독감 증상 때문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윤 장관은 당시 한 종편 방송사 메인뉴스에 출연해 “왜 언행이 자꾸 구설수에 오른다고 생각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인기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상식 밖 답변을 하기도 했다.

‣“아 그래요? 제가 민간 잠수부라 그랬다고요? 기억이 안 나는데….”(홍가혜)

대한민국 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트린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배에 갇힌 아이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더딘 수색 잡업에 대한 분노로 싸워야 했던 18일, 본인을 민간잠수부라고 소개한 홍가혜 씨는 MBN의 진도 현지 인터뷰에 출연해 “갑판 벽 하나를 두고 생존자와 대화를 한 민간 잠수부도 있다” “(생존자가 있음에도) 해경이 민간 잠수부의 구조 활동을 막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는 발언으로 대한민국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거짓 증언임이 드러난 뒤 경찰 출석한 홍가혜 씨는 처음에는 “방송사에서 마음대로 민간 잠수부라고 표기했다”고 책임을 돌렸지만, 방송사에 먼저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자청하면서 스스로를 수차례 민간 잠수부라고 한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경찰이 증거를 들이대면 홍가혜 씨는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뗐다.

‣“사과는 무슨, 사과할 게 있나”(문창극)

정통 언론인 출신 첫 총리후보자로 관심을 받았던 문창극은 국회청문회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했다. 바로 자신의 역사의식 때문.

“식민지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다<2011년 온누리교회 강연>”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어주셨다.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돼 있는 거다<2011년 온누리교회 강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사과를 받을 필요 없다<서울대 강의>”

“제주도 4ㆍ3 폭동사태라는 게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서울대 강의>”


여러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문창극은 대쪽이었다. “사과는 무슨, 사과할 게 있나”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더니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일부 언론의 악의적이고 왜곡된 편집으로 후보자의 발언이 우리 민족성을 폄훼한 취지로 이해되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취재하는 기자를 총리 후보로서가 아니라 언론사 선배로서 대하듯 “지금 취재해 봐도 내가 말할 게 없어. 내가 다 겪어 봐서 알지만 (기사 쓸 게 없다고) 부장한테 가서 얘기해” “어느 신문사냐” 등의 발언도 문제가 됐다.

총리 후보로 지낸 15일 내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문창극은 후보직 사퇴 기자회견에서까지도 “개인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그것은 소중한 기본권이다. 제가 평범했던 개인 시절 저의 신앙에 따라 말씀드린 것이 무슨 잘못이 되느냐”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바빴다.

‣“침몰한 한국 축구, 축구계의 세월호 보는 듯”

한국 축구 대표팀이 가나와의 브라질 월드컵 최종 평가전에서 0-4로 완패하던 날, 소설가 이외수는  한국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패배를 ‘세월호 침몰’에 비유했다.

이외수는 6월 10일 한국-가나의 평가전이 끝난 뒤 트위터에 “한국 축구 4 대 0으로 가나에 침몰. 축구계의 세월호를 지켜보는 듯한 경기였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를 접한 네티즌이 한국 팀의 부진을 세월호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자 이외수 씨는 “속수무책으로 침몰했다는 뜻인데 난독증 환자들 참 많군요”라고 되레 분개했다.

더욱 거세지는 논란에 이외수는 “속수무책으로 침몰했다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만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아 원문 지웁니다”라며 원문을 삭제했다. 이 씨는 곧이어 “세월호는 어쨌든 우리들의 폐부를 찌르는 금기어였습니다. 반성합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56일째 되던 날이었다.

‣정성룡 “퐈이야” 박주영 “따봉”

한국과 꼭 12시간 차이 나는 브라질에서 열린 ‘2014 월드컵’. 시민은 졸린 눈을 비비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태극 전사를 응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무승에 그친 성적뿐만 아니라 투지도 열정도 없는 그들의 모습은 잠을 포기하고 축구를 시청한 축구 팬을 억울하게 만들었다.

압권은 최선방에 선 ‘원톱 스트라이커’ 박주영과 최후방을 지키는 골키퍼 정성룡이었다. 박주영은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단 1개의 슈팅도 날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시스트도 하지 못했다. 팬들은 박주영의 기록을 ‘0골 0어시스트 1따봉 1미안’이라고 조롱했다. 러시아전에서 보여준 건 좋은 패스를 넣어준 동료에게 엄지손가락을 올린 것뿐이며, 알제리전에서는 찬스를 못 살린 뒤 동료에게 손을 들어 미안해한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전 알제리전 두 경기에서 무려 5골을 허락한 골키퍼 정성룡은 16년만에 무승의 성적으로 입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트위터에 “한국에서 봐요. 월드컵 기간 아니, 언제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다 같이 퐈이야(파이팅의 센 발음을 나타내는 유행어)”라는 글을 올려 화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월드컵팀 막내 손흥민은 알제리전에서 1골을 획득하고도 “많은 국민께서 새벽에 응원해 주셨을 텐데, 승리를 선물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애처럼 울었고, 벨기에전에서 29세 정성룡 대신 솔키퍼 장갑을 낀 23세 김승규는 경기 내내 화려한 선방쇼를 펼치다 한 골을 허락하고는 분을 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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