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현대차 충징프로젝트 표류와 설영흥의 퇴장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4-04-13 1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쑨정차이로 흥한 설영흥, 쑨정차이로 인해 발목잡혔나

설영흥 전 부회장과 쑨정차이 충칭시 서기.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시간을 1년여 전으로 돌려본다. 현지 300만대 생산체제를 갖춰 10년후면 3000만대 승용차시장으로 성장할 중국에서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하겠다는 거대한 목표아래, 현대차는 베이징현대의 4공장 후보지로 충칭을 점찍었다. 충칭에 공장을 건설한다면 인근의 쓰촨(四川)성, 구이저우(貴州)성, 후베이(湖北)성, 후난(湖南), 윈난(雲南)성, 산시(陝西)성 등 중부지역과 서부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재차 도약을 펼쳐낼 수 있다. 충칭에는 자동차배후 시설도 잘 갖춰져 있으며, 관련 협력업체도 많으며 창장(長江)을 끼고 있어 수륙운송에도 용이하다. 게다가 충칭에는 운이 좋게도 현대차와 친분이 두터운 쑨정차이(孫政才)가 당 서기로 버티고 있었다.

설영흥 현대차 부회장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칭린(賈慶林) 전 상무위원이 퇴임하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등극한 후 중국내 네트워크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회사안팎의 눈총이 있을 때였다. 설 부회장으로서는 충칭 4공장 계획을 실현해 내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고 '역시 중국사업은 설영흥'이라는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설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충칭으로 날아갔다.

◆10년지기 쑨정차이

쑨정차이는 농작물 증산을 연구해온 박사 출신으로 학계에 유명세를 떨치다가, 1997년 전문가 영입 케이스로 공산당에 입당해 베이징시 순이(順義)구 구장에 발탁됐던 인물이다. 2002년 순이구 서기로 승진해 2006년까지 순이구의 발전을 진두지휘했다.

쑨정차이가 순이구에서 일한 10년은 현대차가 순이구에서 안착하는데 성공했던 기간과 겹쳐있다. 2002년 현대차와 동반 진출했던 한 부품업체 사장은 "젊고 의욕적인 쑨정차이가 순이구에 있었기 때문에 현대차가 신속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1공장과 2공장을 순탄히 건설해 낼 수 있었다"며 "쑨정차이는 당시 현대차의 설영흥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활발하게 교류했다"고 말했다.

순이구 서기로 현대차를 만났던 쑨정차이는 2012년 11월 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에 오르며 중국 권력서열 25위권에 진입했다. 쑨정차이는 2017년 상무위원에 오를 가능성이 크며, 2023년에는 리커창(李克强)에 이어 총리로 등극할 유력한 인사다.

설영흥 부회장은 지난해 3월 충칭에서 쑨정차이 서기를 만나 2000년대 초반 현대차의 베이징 진출 과정에서 나눴던 기억을 서로 회상했다. 설 부회장이나 쑨정차이나 10년전에 비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스스로의 모습에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설 부회장은 현대차의 충칭 4공장 건설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쑨 서기는 흔쾌히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두 지도자간의 구두합의가 이뤄진 만큼 실무진에서의 협상은 빠르게 진행됐다.

◆급물살 타던 충칭프로젝트

2013년 5월에는 현대차의 합작사인 베이징현대차의 쉬허이(徐和誼) 회장이 쑨정차이 충칭시 서기를 면담하면서 충칭프로젝트에 힘을 실었다. 쉬허이 회장은 "충칭의 자동차산업과 경제발전에 최대한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달 후인 2013년 6월 황치판(黃奇帆) 충칭시 시장이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베이징현대가 충칭에 4공장을 짓기로 확정했으며 연내 착공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황치판 시장 역시 공산당 서열 200위권 안의 실력자다. 황 시장의 입으로 충칭프로젝트가 확인된 만큼 프로젝트는 이미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 중국 언론계에서는 "쑨정차이가 충칭시 서기인 것은 하늘이 현대차를 돕고 있는 증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8월 설영흥 부회장은 다시한번 쑨정차이 서기를 만나 프로젝트 진행 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지원을 재차 부탁했다. 정몽구 회장의 2013년 9월 방중이 추진됐다. MK가 직접 중국에 와 베이징에서 상무위원을 면담한 후 충칭으로 건너가 충칭시와 MOU를 맺고 프로젝트를 매듭지은 후 그해 겨울 공장을 착공하겠다는 의지였다.

◆MK의 거듭된 방중무산

하지만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과의 면담일정이 취소되면서 MK의 방중은 무산된다. 글로벌 4위 자동차그룹 회장이 투자를 한다면 중국 상무위원과의 공개적인 '세레모니'가 필요하다. 20분여 형식적인 덕담을 나누고 사진을 찍어도 그 상징성은 크다. 하지만 상무위원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MK와의 면담을 거부했다. 이 때부터 충칭 프로젝트는 표류하기 시작한다. 현대차 내외부에서는 충칭으로 못 갈 수도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차가 들어설 충칭 량장(两江)신구에는 이미 공장부지가 확정돼 있었고 토지작업도 진행된 상태였으며, 공장건설 작업중 근로자들이 사용할 숙소마저도 마련돼 있었다. 지난해 10월 충칭에서 어렵사리 만난 량장신구 관계자는 "베이징현대의 충칭공장 건설안이 중앙정부 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에서 계류중이다"는 말을 했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중국에서 합자기업의 자동차공장 건설은 국무원 발개위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국무원 발개위는 국무원 내 두번째 서열의 부서로 거시경제 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발개위의 승인사항은 리커창 총리가 직접 챙긴다. 이는 곧 현대차의 중경프로젝트의 최종결정권은 리커창에게 있다는 말과 같다. 상황을 종합하면 순항하던 충칭프로젝트를 중앙정부가 제동을 건 셈이다.

프로젝트는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되면서 민감해졌고, 이후 충칭시와 현대차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리고 MK의 올해 1월방중이 다시 추진됐다. 실무진들이 MK의 동선을 체크하고 각 지역을 분주히 다녔지만 1월 방중이 무산됐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상무위원과의 면담 불발이었다. 이어 MK의 2월방중이 추진됐다. 똑같은 과정이 되풀이됐고, 결국 무산됐다.
 

지난달 전략합작기본협의서에 서명하고 있는 설영흥 전 부회장(왼쪽)과 황치판 충칭시장. (사진/중신사)



◆소득없이 끝난 지난 3월 방중

현대차는 상황이 다급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베이징 3공장이 완공한 후에도 중국내에서 물량이 달렸다. GM, 도요타, 폭스바겐 등 경쟁자들은 중국내에 자동차공장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을 상대로 물량에서 밀리면 가격경쟁력을 잃는다. 현대차로서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상황이었다. 이와는 다른 측면으로 설영흥 부회장과 충칭프로젝트 추진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입술이 빠짝 마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프로젝트 좌초의 책임은 그야말로 엄중할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지난 2월 기자가 만난 베이징시 발개위 관계자는 "솔직히 중앙정부는 베이징현대차 4공장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며 "자동차시장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서도 서둘러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고, 토종업체들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며, 지금은 과거와 달리 현대차의 기술이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나도 모른다"면서도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특별한 정치적 수요가 없는 한 충칭프로젝트를 서둘러 매듭지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중앙정부가 소극적이더라도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문제가 풀린다. 쑨정차이가 국무원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펼쳤으면 일이 성사됐겠지만, '국무원 총리'라는 큰 꿈을 꾸고 있는 쑨정차이가 리커창 총리에 대립각을 세울 수는 없었다.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는 '과거 인연을 바탕으로 현대차와 결탁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것도 현재는 정풍운동이 한창 진행중인 서슬퍼런 정권초기다. 현대차가 믿었던 쑨정차이지만, 쑨정차이로 인해 프로젝트의 진척이 더뎌진 셈이었다. 

사정이 급한 현대차는 MK의 3월방중을 추진했고, 이번에는 실제로 중국에 왔다. 하지만 상무위원과의 미팅은 성사되지 못했다. MK는 충칭에서 쑨정차이를 만나긴 했지만 MOU(중국명 전략합작협의서)조차 맺지 못했다. 대신 '전략합작기본협의서'라는 MOU 전(전)단계의 애매모호한 이름의 문서가 체결됐다. 내용은 "충칭시는 현대차그룹을 최대한 지원하고, 현대차는 충칭공장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계약체결의 주체는 베이징현대가 아닌 현대차였다. 공장을 세우는 것은 베이징기차가 50% 지분을 가지고 있는 베이징현대다. MK의 방중에 합작사인 베이징기차도 외면한 것. 결국 MK는 법적인 효력도 없을 뿐더러 지켜지기도 힘든 합의서를 들고 귀국한 셈이다. 현대차그룹내에 이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됐음은 명약관화다.

◆베이징현대 4공장 허베이성 급부상 

MK의 귀국 이후 충칭프로젝트에 큰 변화가 생겼다면서 허베이성 창저우(滄州) 등지를 주목해야 한다는 현지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한 것. G2 국가의 수도인 베이징이 허베이성의 노후한 공장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몸살을 겪고 있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노후한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친환경적인 베이징현대차 공장을 투입해 대량해고를 막아내기로 방침을 확정했다는 게 기사들의 골자다. 그동안 뒷짐지고 있던 중앙정부의 속내가 일견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손해를 입는것은 한시가 급한 현대차다. 대신 중국정부는 현대차의 입장을 훤히 꿰뚫고는 시간을 끄는 지연전술을 펼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전세계 자동차메이커들이 모두 진출해 있으며 앞다퉈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공장이 하나쯤 덜 지어지더라도 중앙정부로서는 그리 큰 손해가 아니다.

허베이 공장은 현대차로서는 그리 큰 메리트가 없다. 충칭은 서부진출이라는 크나큰 메리트가 있지만, 허베이는 이미 3곳의 공장을 운영중인 베이징과 가까워 지역적인 메리트가 없다. 그렇다고 공장 추가건설을 포기할 수도 없다. 현대차로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베이징내의 한 업계관계자는 "현대차가 충칭에 공장을 건설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날 것이며 중국 1위라는 그룹의 목표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면서 "이 프로젝트의 결론이 어디로 날지는 모르지만, 결국 중국 중앙정부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겠는가"라고 내다봤다. 2004년 그룹 부회장에 오른후 10동안 롱런했던 설영흥 부회장이 지난 11일 사직했다. 그가 내놓은 사직이유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내주기 위해서다. 2002년 중국에 진출해 지금의 현대차를 일궈낸 주역이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퇴장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