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현대판 ‘허삼관’이 말해주는 중국사회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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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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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 위화의 대표 소설 ‘쉬산관마이쉐지' [사진 = 바이두 캡쳐]



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중국 작가 위화(余华)의 대표 소설 ‘쉬산관마이쉐지(許三觀賣血記)’가 최근 하정우, 하지원이 주연의 영화 ‘허삼관매혈기’로 각색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자신의 혈액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 ‘허삼관’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 이 소설은 따뜻한 부정(父精)의 위대함 뒤에 숨겨진 냉혹했던 당시 사회현실의 일면을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80년대 말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마약정맥주사와 동성애 문화가 밀려들어오면서 중국 정부는 에이즈 예방을 위해 수혈 관련 제품의 수입 금지를 단행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내에서는 채혈을 통해 돈벌이를 하는 혈액은행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당시 ‘혈장(血漿)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채혈은 중국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주 채혈 대상은 낙후된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월 소득 100위안 미만의 빈농들로 ‘매혈 대군’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매회 40위안~50위안의 대가를 받고 목숨을 건 매혈을 이어갔다.

수 십 년이 흘렀지만 허구 같은 현실은 현대사회에서도 진행 중이다. 하루에도 몇 건씩 혈액 매매 광고가 인터넷에 게재될 정도로 생계를 위한 매혈 여로를 걷고 있는 ‘현대판 허삼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분별한 채혈 과정 속에 빠르게 확산된 에이즈가 뿌리깊은 병폐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관영 CCTV는 ‘에이즈촌’이라 불리는 허난(河南)성 상차이(上蔡)현 우룽샹슝차오(五龍鄉熊橋) 마을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불법 매혈과 이에 따른 에이즈 문제를 다뤘다. 이들 대부분은 돈벌이의 유일한 탈출구로 불법 매혈을 선택한 뒤 점차 헤어나올 수 없는 에이즈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대판 허삼관의 모습 속에서 중국의 화려한 발전 뒤에 가려진 빈부격차의 음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바꾼 누군가의 혈액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끈이 될 수 있다는 잔인한 현실이 다시금 느껴지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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