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대학변화> "대학, 고름 터트리고 변해야 산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2-01-01 00: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아주경제 박성대·박선미 기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들고나온 교육정책의 핵심은 ‘대학이 변해야 한다’였다.

정권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개혁의 메스를 들이댔지만 대학의 병폐는 곪아가기만 했고, 지난해를 기점으로 그 고름이 터지기 시작했다.

반값 등록금, 자퇴사태부터 심각한 취업난, 바닥을 기는 대학경쟁력과 부정과 비리 재단 등 심각한 현실에 직면했다. 이제 '변해야 된다'는 마음 편한 구호만 외칠 때는 지났다. 그야말로 이젠 '변해야 살 수 있는 때'가 도래했다.

◆ 취업에 목매는 대학

"대학이 계속해서 상아탑으로 불리는 것은 대학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다. 취업준비소가 딱 들어맞는다." 교육관계자들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라며 의견을 모으는 말이다.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는 취업용 맞춤 동아리며 최근 대학들의 학과 통·폐합도 '취업 잘되는 학과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대학 취업률이 정부가 대학을 지원하거나 수험생이 대학을 선택할 때 보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됨에 따라 일부 대학은 졸업생을 자기 대학에 단기 취업시키는 방법으로 취업률을 부풀리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대학정보 공시사이트 대학 알리미의 4년제 일반 대학 162개 대학(졸업생 200명 이상 기준) 교내 취업자 현황에 따르면 5개 대학이 올해 전체 졸업생의 5% 이상을 교내 자체에 취업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A대학은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보는 직무적성검사의 모의시험 성적을 전자공학부 수강신청 필수조건으로 내걸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대학 전자공학부의 한 학생은 "이제는 학교가 오로지 취업만을 목적으로 삼는 것 같다"며 "취업이 아닌 다른 목표를 갖고 있는 학생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학교 측의 행태를 비난했다.

대학이 이런 형태로 취업률 올리기에 목매달아도 기업에서는 탐탁치 않은 반응이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은 사회로 나오면 4분의 1 정도만 쓸모 있는 것 같다"며 "이공계 졸업자마저도 90%는 입사 후 재교육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적립금 쌓기 바쁜 대학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대학들이 '뻥튀기'한 예산을 바로잡으면 지금보다 등록금을 최소 12.7%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대학가 및 누리꾼 등 여론은 들끓었고 대학의 방만한 경영실태에 대한 비난은 한층 높아졌다.

당시 감사원이 113개 대학과 교육과학기술부 등 감독기관을 대상으로 대학 회계장부를 검토한 결과, 대학들이 다음해 예산을 짤 때 수입은 줄여 잡고 지출을 늘리는 방법으로 등록금을 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적립금을 쌓이다보니 어느새 국내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은 10조원을 넘어섰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303개 4년제 사립대와 전문대, 대학원의 2010회계연도 교비회계 중 누적적립금 합계액은 10조903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이런 적립금에 대해 전혀 문제될것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S대학교 관계자는 "등록금을 받는 대로 장학금으로 다 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학교 마다 운영상황이 다른데 자율권까지 침해할 근거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대학에 대한 관리감독이 자율성을 침해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 및 합리성이 제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대학들이 적립금에 대해 정당성을 가지려면 등록금을 적립금으로 적립할 때 적용되는 상한선 규정 등의 법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SKY도 싫다"…대학 등지는 학생

이런 대학의 행태에 실망해 급기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일명 '스카이(SKY) 대학'으로 불리는 한국 최고의 대학을 떠나는 학생들까지 나왔다.

이들은 진리 추구의 전당이 돼야 할 대학이 취업학원·자격증 취득소로 전락하는 것과 함께 연간 최고 1000만원대에 달하는 학비를 대기 위해 허덕여야 하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학업을 포기했다.

지난 2010년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가 첫 공개 자퇴를 선언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어 지난해 11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유윤종씨, 12월에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장혜영씨마저 대자보를 붙이고 학교를 떠났다.

고려대 자퇴생 김씨는 대자보에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며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남기고 자퇴서를 제출했다.

서울대 자퇴생 유씨는 대학 서열화와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씨는 대자보에 "대학 서열화나 입시 문제는 대학 교육에도 악영향이 있으며, 등록금 문제도 서열화 및 초과수요 문제와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며 "사회에서의 학력·학벌 차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저항하고 싶다"고 자퇴 이유를 밝혔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최근 연이는 대학자퇴사태는 학벌주의에 따른 학부 졸업장의 '취업 꼬리표화(化)'가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시각변환 사례"라며 "정부와 대학은 교육개혁만 외치기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총체적 진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