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전명자 "푸른빛의 오로라는 내 작품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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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1-0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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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화랑서 1일부터 36회 개인전 '오로라를 넘어서'등 신작 30여점 선봬

1995년 오로라를 본 이후 오로라의 푸른빛에 매료된 서양화가 전명자 화백은 매년 오로라를 만나러 네덜란드 핀란드를 여행하며 오로라의 강렬한 느낌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이번 전시가 끝나면 곧바로 노르웨이 핀란드로 오로라 보러가요. 올해는 기후온난화로 색깔이 달라지고 있다고 해요. 초록과 블루 신비로운 색에서 빨강 노랑색이 나온다고 하네요."

'오로라'와 '꽃'의 화가 서양화가 전명자(69)화백은 만나자 마자 '오로라'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첫사랑을 만나는 소녀처럼 반짝이는 눈빛과 설렘을 숨기지 않았다. 일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파리를 거쳐 노르웨이, 핀라드로 오랜 시간을 거쳐 가는 힘든 노정에도 오로지 오로라 볼 생각에 15년째 행복하고 감사하게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황홀하고 신비스런 오로라는 창조 모티브

매년 보는 오로라인데 무엇이 얼마나 좋을까. 전화백은 "오로라를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면서 "그 푸른빛과 마주하면서 나 자신이 완벽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로라는 자연이 연출하는 최고의 쇼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장대하고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빛과 패턴들은 조물주가 피조물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퍼포먼스다. 황홀하고도 신비스럽게 펼쳐지는 북극광이 자아내는 대서사시와도 같은 장엄한 비경은 작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창조적 모티브다.

1일부터 서울 선화랑에서 36번째 개인전을 여는 그는 이번 전시에도 오로라의 푸른빛이 전시장을 감싸고 있다.

그의 작품이 어딘지 모르게 맑고 고요하며 사색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청색조의 화면 때문이다. 화면엔 아기자기하고도 감미로운 체리 핑크도 돋보이지만 '프러시안 블루'의 신비함속에 작가의 꿈과 열정이 담금질되어있다.

오로라 푸른빛에 매료된 전화백은 "색중의 색은 블루에요. 블루는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성취하게 하는 만드는 색으로 악마의 색으로도 불렸다"며 "50여종의 블루색이 있다"고 했다.

1995년 아이슬란드에서 직접 본 푸른빛 오로라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이후 오로라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푸른빛을 캔버스에 담아왔다.

오로라에서 얻은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전화백은“터키 블루가 가장 따뜻하면서도 우아한 푸른빛을 내는 것 같다”며 "국내에서는 터키블루색을 얻을 수 없어 파리에서 물감을 몇통씩 공수해온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가 수년째 선보인 ‘오로라를 넘어서’ 시리즈와 흐드러지게 핀 꽃과 사람, 나무, 하늘과 어우러진 정원 등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조화’ 시리즈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신작에는 군마(群馬) 행렬, 오케스트라 연주 모습,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겸재의 금강산도를 떠올리게 하는 산수 이미지 등을 담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오로라를 넘어서. 162*130.3cm.유화.2011

◆오로라의 푸른빛의 들장미에서 해바라기로 변화

그동안 들장미를 많이 그린 작가는 이번에는 오로라의 푸른빛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황금색 해바라기를 선보인다. 하늘을 바라보며 넘실대는 해바라기는 그야말로 '해 바라기'다. 그속에서 연주하는 사람들과 해바라기속의 개구리, 앵무새, 이구아나가 뛰노는 화폭은 평화롭다.

“여름과 겨울에 유럽에서 지내곤 하는데 유럽 해바라기는 한국 해바라기와는 많이 다릅니다. 아래로 굽은 것 없이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노란색이 아니라 금빛을 띱니다. 금빛 해바라기를 담기위해 엄청 신경썼어요.앞으로는 해바라기와 오로라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전화백의 작품은 화목한 가족, 사랑스런 연인들,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합주등 평범한 일상들이 행복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고단함과 슬픔보다는 환희와 희망, 기쁨을 선사한다.

“늘 내 작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번엔 전시장에 걸린 내 그림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힘이 쫙 빠지는 ‘스탕달 신드롬’(멋진 예술 작품을 보고 잠시 정신 착란에 빠지는 현상)을 경험했어요.”

그림 그릴땐 고통이지만, 그 순간을 넘어 맞이하는 환희는 작가의 원동력인듯 했다.

자연의 조화 100x100cm oil on canvas 2010

◆교수직 버리고 파리행, 11년간 블란서에서 왕성한 활동

전 화백은 그림을 위해선 이기적이었다. "화가로 남고 싶지, 교수 전명자로 남고싶지 않다"는 생각에 서울여대 교수직을 버리고 90년대 프랑스로 날아갔다. 아이둘을 놓고 가면서 남편에겐 "이혼을 해도 가질 재산이 있는데, 대신 파리에 집을 사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파리에 집이 있으면 쉽게 한국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란 각오때문이었다. '미쳤냐'는 주위반응과 남편의 만류,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은 당시 여의도집을 팔아서 파리에 집을 사줬고, 전화백은 95년부터 11년간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화생화사(畵生畵死)했다. 덕분에 파리 아메리칸 아카데미대학교수로 초빙됐고 프랑스정부가 설립한 예술가의 대표기간인 국립미술원의 작가로 선정됐다. 2005년 12월 프랑스 국립미술협회전(SNBA)에서 금상을, 2007년에는 영예대상을 받은 바 있다.

전화백의 열정은 감사함에서 오는 듯 했다. "파리에서 만난 방혜자화백에게 성실하게 그림그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또한 일흔을 앞두고 붓을 놓지않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또 "대학 동기인 이숙자,구자승화백이 아직도 작가로 남아있어 행복하다"고도 했다. 특히 이제껏 그림그릴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외조해온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고도 했다. 오로라 여행도 남편과 함께 간다고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선화랑 김창실 사장과의 추억도 쏟아졌다. "어느날 새벽이었어요, 벨이 띵똥하고 울리는데 보니까 김사장님이 대구를 들어 보이더라고요. 포항서 사왔는데 너무 싱싱해서 주고가려고 왔다면서 그림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남기곤 가셨지요."
지금도 "그동안 얼마나 그렸어?", 전화해서 격려해주곤 하던 일들이 떠오른다며 "이번 전시를 위해 정말 열심히 그렸다"고 했다.

전 화백의 전시가 열리때면 인사동이 들썩인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사촌지간으로 전 화백 전시장에 방문하기 때문. 이전에 화랑손님까지도 나가게 할 정도로 경호가 심했는데, 이번전시에는 대통내외분은 전시기간중 조용히 다녀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전화백은 이번 전시를 마친 뒤 프랑스에서 ‘세계작가 비교전-파리 그랑팔레’와 12월 루브르 박물관 내 전시관에서 열리는 국립미술협회 회원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전시는 14일까지.(02)734-0458

오로라를 넘어서 210x162cm oil on canvas 2011.

◇작가 약력
▲전명자화백=△196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70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석사)△1976~80년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 수학,1995 파아메리칸 아카데미 졸업 △개인전 35회,단체전 300여회.
▲작품소장=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성남아트센터, 프랑스 대사관 파리KBS, 파리 에비앙시 시청, 영국 세지필드시 시청, 뉴욕 45번가 베라왕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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