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으로서 우리 마을을 찾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일 거요.” 두씨 노인은 이렇게 말한 뒤 자기가 이곳에 정착하게 된 내력을 소개했다.
“내 고향은 옌안(延安)이지요. 가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눌러앉게 된 곳이 이곳입니다."
“그렇다면 도시로 갔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이곳은 옌안보다 더 외지고 궁핍한 곳인데…”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곳이 고향같아요.”
두 노인과 얘기하는 나를 마을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들의 말과 표정 행동에서 순박함과 함께 외지인을 대하는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하면서 술자리의 흥취가 더해졌다. 나는 그들의 생활형편과 농사에 관한 사정을 주로 물었다. 이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작물과 정부지원, 농작물 출하 상황은 어떤지를 물었다.
60대 중반쯤 돼 보이는 한 마을사람은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며 땅콩과 도마토를 가져와 맛을 보라고 했다. 또 40대의 다른 사람은 두 노인네가 내놓은 백주(고량주)가 떨어지자 동네 상점에서 4명들이 백주 한꾸러미를 사가지고 왔다.
백주는 먼지를 가득 뒤짚어쓴 채 그물망에 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외국인으로서 처음 우리 마을에 온 걸 환영한다.”며 농삿일이 궁금하면 내일 자신의 밭에 나를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다.
여름밤 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총총히 빛나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지나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두씨 노인도 내일 또 밭에 나가야하니 이제 그만 쉬자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두씨 노인네 아들의 권유로 나는 버드나무가 있는 개울물에 나가 노천 목욕을 하고 어둑한 밭둑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는 사그러들고 밤공기가 꽤나 상쾌하고 부드러웠다.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하고 하늘엔 주먹만한 별들이 휘뿌옇고 고적한 산촌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유성 한 개가 길게 꼬리를 물고 황토고원 저편 캄캄한 지평선위로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엊저녁 나를 자기 밭에 데려가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일찍 두 노인 집 마당에 나타났다. 황토 길을 따라 30분쯤 걸어가자 진흙과 비닐을 섞어서 지은 비닐 하우스가 나타났다. .
그는 2무(약 400평) 정도 되는 면적에 재배시설을 설치해놓고 오이와 도마토 농사를 짖고 있었다.
“이곳이 우리 밭입니다. 오이와 도마토와 딸기를 재배하고 노지에는 보리와 감자 콩을 심어 구위안에 내다 팔지요 ”
“오이는 중간 도매상에 넘기는 한 근가격이 4마오(약60원)입니다. 여름 내내 오이 농사를 지어 봤자 손에 쥐는 돈은 800위안(약 15만원)에도 못믿쳐요.”
그는 내가 풀을 매고 간간히 오이를 따서 바구니에 넣는 동안 담배 한가치를 빼어물며 길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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