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공개를 둘러싼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신경전이 외교 갈등으로 번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포로들의 한국행 선택이 파병군의 ‘영웅 서사’에 부담이 되는 만큼 의도적으로 대응을 자제하는 ‘전략적 침묵’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군 포로 송환에 대해 북한 측의 특이 동향이나 반응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동향 등이 파악된 바 없다”며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한 이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 매체도 포로 송환은 물론 이를 둘러싼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을 다루지 않고 있다.
북한의 침묵은 포로 송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 자체가 군인들의 생존과 한국행 선택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간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을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 영웅으로 내세워 왔다. 그러나 생포된 군인들이 북한 복귀 대신 한국행을 선택한 사실은 충성과 희생을 강조해 온 북한의 파병 서사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포로들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행을 희망했다는 사실이 주민과 군 내부에 알려지면 파병 군인들의 사기와 추가 파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당장은 침묵을 유지하며 포로들의 국내 정착 과정과 공개 활동 여부를 지켜볼 가능성이 제기된다. 포로들이 언론 인터뷰나 공개 증언에 나설 경우에는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이들을 회유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공세에 나설 수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군 포로들의 한국행은 북한이 파병 군인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기념탑과 기념식까지 마련한 상황에서 큰 흠결이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며 “포로들이 공개 활동을 통해 파병 실상이나 북한 체제를 비판하지 않는 한 북한은 이 사안을 굳이 키우지 않고 저강도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송환 공개 과정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이 서둘러 대응할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북한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비공개 합의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 정부가 공방을 벌이면서 외교적 불협화음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전날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 포로와의 교환 기회를 포기했다는 국내 비판을 우려해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먼저 요구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도 포로와 북한에 남은 가족의 안전, 외교·안보상 파장을 고려해 비공개에 합의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송환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이 비공개 합의 자체를 부인하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측 발표를 “허위 공보”로 규정하고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 상태다.
양국의 공개 충돌은 이미 러시아의 선전전에도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 문제가 불거진 초기부터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관련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서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서울을 ‘젤렌스키 정권의 공범’으로 만들려 한다며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협력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사안이 향후 북미대화 구도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한국을 대화 상대가 아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가담한 당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포로 송환에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관여한 사실을 ‘적대행위’로 규정할 경우, 향후 북미대화가 재개되더라도 한국을 중재자나 협상 당사자에서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미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한국과 마주 앉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북미)대화의 과정과 결과 어느 단계에서도 한국의 개입을 막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사안 역시 ‘한국 배제’ 기조를 강화하는 추가 명분이자, 북한의 대남 적대 인식을 강화하는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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