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예수였다고 주장하는 어떤 남자

“콜럼버스와 항해할 기회가 있었어요.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때가 되니 의심이 들더군요. 땅끝에 다다르면 추락해버리지 않을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던 존 올드맨이 10년의 교수생활을 접고 떠나기로 한 날, 환송회를 하는 자리에서 동료 교수들에게 고백하길, 자신은 1만4,000년 전의 크로마뇽인이며 서른다섯살 정도에서 더 이상 늙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도대체 왜 갑자기 존이 학교를 떠나는지 납득을 못했던 동료 교수들은 이 상식밖의 고백을 농담으로 치부해버리려다, 사뭇 진지하게 받아주기 시작한다.
 

“잠깐, 환생 같은 건 아니지? 수백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서 쌓인 기억인 거야?”

 
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폭발해버린 동료들은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당시의 지리가 어떠했는지, 그때 언어는 기억하는지, 병을 앓아봤는지. 여기에 존은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며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를 1인칭의 시점에서 펼쳐내 보인다.
 
영화 맨 프럼 어스 사진IMDB
영화 '맨 프럼 어스' [사진=IMDB]
 
2007년작 영화 <맨 프럼 어스>는 거창한 특수효과도, 시간여행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영화의 대부분은 주인공의 집 안 거실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럼에도 이상할 만큼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존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진짜 1만4000년을 살아온 사람인지, 아니면 역사학자가 만들어낸 정교한 거짓말인지 영화는 한동안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만약 누군가 눈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역사를 뒤집는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던 교수들도 존의 이야기가 구체성을 더해갈수록 태도가 달라진다. 고고학, 생물학, 심리학, 종교학 등 각자의 전문지식을 동원해 그의 이야기에 허점이 없는지 파고든다. 이에 존은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학자들이 보여주는 태도다. 그들은 진실을 찾는 호기심 넘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지키려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존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지식과 맞아떨어질 때는 인상적인 가설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드러나면 존의 말이 거짓말일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다.
 
이렇게 허둥대는 학자들의 모습을 보다보면 사람들은 진실을 발견하는 일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을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때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모순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전에 먼저 의심을 한다. 갖고 있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 그 이후에 찾아올 혼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역시 존이 무엇을 경험했느냐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과 상식이 흔들리는 순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있다.
 
영화 맨 프럼 어스 사진IMDB
영화 '맨 프럼 어스' [사진=IMDB]

특히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대화는 단순한 역사 토론을 넘어선다. 존이 수천년 전 십자가에 매달렸다가 동굴에 버려졌으나 3일만에 빠져나온 어떤 남자가 바로 자기였다고 고백하는 순간, 대화를 나누던 공간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지식의 맞고 그름을 논하던 대화가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더이상 존의 이야기를 단순한 가설로 대할 수 없게 된다. 존의 진술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어떤 사람에게는 신성모독이었으며 세계관을 뒤흔드는 허튼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의 설득력 있는 설명은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고 그 말이 사실인 것만 같아 자신의 믿음에 균열이 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믿음과 충돌하는, 충분히 설득될 만한 사실(물론 증명된 사실은 아닐 지라도)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맨 프럼 어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1만4000년을 산 인간’이라는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발견했을 때 정말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때문이다.
 
존이 정말 1만4000년을 살았는지는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완전히 확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관객 역시 존의 이야기를 들으며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 교수들과 똑같은 위치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화면 너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판단의 기준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이다. 그러니 <맨 프럼 어스>는 영화를 보는 각 관객의 내면 속 사실과 믿음을 경쟁시켜보는 기회를 준다.
 
시간을 초월한 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수만 년의 인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 체험케 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는다. 내 눈앞에 진실이 드러난다 해도 나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까. 결국 나의 내면 속 이 싸움의 승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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