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논설위원장]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마침내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96세다. 최고경영자 자리를 후계자에게 넘긴 데 이어 회장직에서도 퇴진하면서, 1965년 경영권을 장악한 뒤 60여 년 동안 이어진 ‘버핏의 버크셔’도 하나의 시대를 마감하게 됐다.
세계 투자금융사의 거대한 한 장이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에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왜 AI·알고리즘·초고속 금융의 시대에 세계는 여전히 96세 투자자의 판단을 신뢰하는가?”
지금의 금융시장은 버핏이 처음 주식을 샀던 1940년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인공지능(AI)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주식을 사고판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이 몇 초 만에 시장가격에 반영된다.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GPU는 인간이 평생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를 짧은 시간에 분석한다.
그런데 역설적이다. 금융이 이렇게 빨라지고 영리해졌는데도 세계의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 중서부 오마하에 사는 노인의 한마디에 귀를 기울여왔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버핏이 평생 무엇을 샀는가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가 투자하면서 무엇을 배웠으며, 그 결과 무엇을 축적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버핏의 80년 투자 인생을 압축해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진화가 나타난다. 젊은 시절에는 가격(Price)을 보았다. 그 다음에는 가치(Value)를 발견했고, 다시 기업의 질(Quality)을 중시했다. 좋은 기업을 발견한 뒤에는 시간(Time)의 힘을 이용했다. 오랜 시간이 쌓이면서 신뢰(Trust)가 만들어졌고, 마침내 그 신뢰는 권위(Authority)가 됐다.
젊은 버핏은 무엇보다 가격을 중시했다. 그는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충실한 제자였다. 실제 가치보다 현저하게 싼 주식을 찾아 사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었다. 1달러 가치의 자산을 50센트에 사는 방식이다. 버핏이 1965년 당시 쇠락하고 있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장악한 것도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싼 기업이 반드시 좋은 기업은 아니었다.
여기서 평생의 동반자 찰리 멍거의 영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형편없는 기업을 아주 싼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1972년 인수한 시즈캔디는 이러한 전환의 상징이었다. 공장과 설비 같은 유형자산보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신뢰가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버핏은 배웠다. 이후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GEICO 등에 대한 투자는 같은 철학에서 나왔다.
버핏의 관심은 ‘싼 주식’에서 ‘좋은 기업’으로 이동했다. 좋은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경쟁우위와 강력한 브랜드, 가격 결정력, 지속적인 현금 창출 능력,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경영자가 있었다. 버핏은 이를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중세(中世)의 성을 둘러싼 해자처럼 경쟁자가 쉽게 넘어올 수 없는 장벽을 가진 기업이었다.
그러나 버핏의 투자철학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진화한다. 좋은 기업을 발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시간을 그 기업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코카콜라는 이를 상징한다. 버크셔는 1980년대 후반 코카콜라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였고 장기간 보유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그것이 다시 투자되면서 복리의 힘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졌다. 그래서 버핏의 가장 강력한 투자 도구는 첨단 금융공학도 컴퓨터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월스트리트가 하루, 한 달, 한 분기의 수익률을 놓고 경쟁할 때 그는 10년, 20년 뒤를 생각했다. 다른 투자자들이 끊임없이 사고팔 때 좋은 기업을 발견하면 오래 기다렸다.
여기에 버핏 투자의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그는 무엇을 하는 능력 못지않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능력을 키웠다. 투자할 기업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지 않았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기다렸다. 좋은 투자처가 없으면 막대한 현금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기다림은 때로 무능력으로 보인다. 버핏에게 기다림은 하나의 전략이었다. 이것이 AI 시대에 그가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다.
속도가 반드시 지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빨리 계산할 수 있다. 수천 개 기업의 재무제표를 몇 초 만에 비교할 수도 있다. 뉴스와 시장 움직임 사이의 시간차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빠른 계산과 좋은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니다. AI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간보다 빨리 알려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 어떤 기업을 20년 동안 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버핏이 평생 쌓아온 것은 바로 이러한 판단의 능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세계 금융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 버핏은 골드만삭스에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중요한 것은 50억 달러만이 아니었다. ‘버핏이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다. 그의 돈이 들어가는 순간 시장에는 돈과 함께 또 다른 자산이 공급됐다. 신뢰였다.
여기서 버핏은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선다. 젊은 버핏이 가격을 샀다면 노년의 버핏이 축적한 것은 ‘신뢰자본(Trust Capital)’이었다. 기업 경영자들은 회사를 팔 때 버크셔를 찾아갔다. 버크셔가 단기 차익을 노리고 회사를 해체하거나 되팔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들도 버핏에게 자본을 맡겼다. 그가 그 돈을 장기적으로 합리적인 곳에 재배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버크셔 해서웨이를 단순한 투자회사라고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험회사가 만들어내는 플로트(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급의 시차자금) 와 자회사들의 현금흐름, 주주들이 맡긴 자본을 다시 생산적인 곳으로 배분하는 거대한 신뢰 기반의 자본 배분 시스템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버핏이 일본에서 특히 존경받는 이유도 이 대목에서 흥미롭다. 그는 2019년부터 이토추상사,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마루베니 등 일본 5대 종합상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20년 투자를 공개했을 때 이미 각 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을 늘려 이제는 5개사의 10% 안팎을 보유한 주요 주주가 됐다.
처음에는 각 회사 지분을 9.9% 이상 보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분이 이 한도에 가까워지자 일본 상사들이 상한 완화에 동의했다. 버핏은 후계자들도 이들 기업의 주식을 수십 년 동안 보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순한 일본 주식 투자가 아니다. 일본 종합상사는 다양한 사업에서 현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새로운 사업에 재배분한다. 버크셔와 상당히 닮은 구조다. 버핏이 본 것은 일본 주가의 단기적인 상승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하는 기업문화와 현금 창출 능력, 자본배분 능력, 경영진의 자세를 본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뢰가 양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사실이다. 버핏이 일본 상사를 신뢰했지만 일본의 대표 기업들도 버핏을 장기 주주로 받아들였다. 투자자와 기업 사이의 신뢰가 서로 만난 것이다.
그러나 버핏의 80년 여정은 신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신뢰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 권위가 된다. 권위는 권력과 다르다.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이다. 권위는 강제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 사람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다. 버핏에게는 중앙은행 총재처럼 금리를 결정할 권한도 없고 정부처럼 법을 만들 권력도 없다. 그런데 그가 어느 기업의 주식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세계의 투자자들이 그 기업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가 시장의 과열을 경고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다시 점검한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성과가 신뢰를 만들었고, 그렇게 축적된 신뢰가 마침내 권위를 만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버핏의 태도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쉽게 투자하지 않았다. 닷컴 열풍 때 인터넷 기업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던 이유다. 반대로 애플은 단순한 기술회사가 아니라 강력한 소비자 생태계와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라고 판단한 뒤 버크셔 역사상 가장 중요한 투자 가운데 하나로 키웠다.
AI에 대해서도 그의 태도는 비슷했다. 버핏은 자신이 AI를 잘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동시에 AI가 엄청난 선을 가져올 가능성과 엄청난 해악을 가져올 가능성을 함께 지적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만들어낸 AI 영상을 직접 본 경험을 소개하며 사기와 허위 정보가 급증할 가능성도 경고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핏이 AI의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가 평생 중요하게 여겼던 이 태도는 AI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지금은 모두가 미래를 설명하려 한다. 범용인공지능이 언제 등장할 것인지,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지,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인지 수많은 전망이 쏟아진다. 그러나 버핏의 철학은 다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한다. 좋은 기업을 찾고 충분한 안전마진을 확보한 뒤 시간이 자신의 편이 되도록 기다린다.
어쩌면 AI가 인간에게 주는 가장 위험한 유혹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버핏이 AI 시대에 남기는 가장 중요한 유산은 특정한 투자기법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판단의 규율이다. 정보와 지식을 구별하고, 지식과 판단을 구별하며, 판단과 지혜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AI는 정보의 생산비용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누구나 방대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비슷한 분석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정보 자체의 희소성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욱 희소해질 것인가. 판단이다. 인내다. 책임이다. 그리고 신뢰다. 그 위에 오랜 시간 검증된 권위가 만들어진다.
버핏의 80년 투자 인생은 바로 이 과정을 보여준다. 가격을 보던 젊은 투자자는 기업의 가치를 발견했다. 가치에서 기업의 질을 발견했고, 좋은 기업에 시간을 투자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신뢰를 얻었고, 수십 년간 검증된 신뢰는 마침내 권위가 됐다. 많은 사람이 돈을 번다. 일부는 뛰어난 성과를 낸다. 그보다 적은 사람만 수십 년 동안 성과를 지속한다. 더 적은 사람만 그 과정에서 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극소수만이 그 신뢰를 시대를 넘어 통용되는 권위로 바꾼다. 버핏이 바로 그 드문 경우다.
AI 시대의 자본주의도 어쩌면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빠른 GPU, 더 정교한 알고리즘만으로 더 좋은 자본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것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인간의 책임은 오히려 커진다. 버핏은 AI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첨단 금융공학을 만든 사람도 아니다.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오마하에서 평생 기업과 인간을 관찰했다. 그런데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계산하는 시대가 되자 역설적으로 그의 철학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기계가 속도를 담당한다면 인간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AI가 계산한다면 인간은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이 빨라질수록 신뢰는 더욱 비싸진다. 그리고 오랜 시간 검증된 신뢰만이 권위가 된다.
96세의 노(老)투자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비싼 자산은 어쩌면 주식도 돈도 아니다. 시간을 견뎌낸 판단, 신뢰, 그리고 권위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는 자산이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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