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유한) 태평양(BKL)과 무역구제학회는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태평양 본사에서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과제: 보세공장 운영의 실태와 개선 방향'을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14일 밝혔다.
세미나에는 정부, 학계,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들과 철강, 화학, 섬유, 타이어 등 유관 산업 종사자들이 참석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통상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 보세공장 제도를 점검함과 동시에 보세공장 제도 본연의 취지를 잠탈하고 무역구제조치를 회피하는 움직임에 대한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최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반덤핑관세 등 무역구제 조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보세공장이 이러한 조치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하는 경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보세공장의 본래 취지인 수출 증진과 가공 무역을 통한 가치 창출이라는 순기능은 유지하면서도 무역구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창환 무역구제학회 회장(건국대학교 교수)은 개회사를 통해 "무역구제 제도가 서면상의 규범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산업 보호와 공정한 통상 질서 확립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실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관한 논의를 서두를 시점"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주성준 태평양 변호사가 국내 보세공장을 통한 반덤핑관세 회피 가능성을 살펴보고, 미국·EU·일본 등 주요국의 보세구역 관리 제도를 비교·분석했다.
주 변호사는 주요국이 원료 과세, 경제성 심사, 보세공장 허가 심사 등 다층적인 장치를 통해 무역구제 조치의 우회를 방지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는 반덤핑 조치 대상 물품을 사용하는 보세공장에 대한 허가심사 시 무역구제 조치 회피 가능성 등을 심사하는 기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영진 이화여대 교수(전 무역위원회 위원)와 정재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반덤핑 조치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산업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임을 재차 강조하며, 해당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 피해 기업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나라 보세 제도의 연혁을 살피고, 변화된 통상 환경에 대비해 보세공장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이고은 산업연구원 연구원이 수입산 철강 증가 추이와 무역구제 조치 이후 보세공장 반입 급증 등 수입 구조 분석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우리 정부가 후판, 열연 등 주요 철강 제품에 대한 무역구제 조치를 단행했음에도 올해 상반기 기준 규제 대상 물품의 수입(보세공장 반입 포함)은 현저히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의 보세공장 신청 확대 등을 고려할 때 보세공장을 통한 반덤핑 조치 회피 가능성에 대한 점검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본산 열연은 반덤핑관세 조치 시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역구제 조치 이전보다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도 지적했다.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산업부 과장)와 이찬기 태평양 고문(전 관세청 차장)은 토론을 통해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우리나라가 중국발 과잉 생산의 우회 기지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한 보세공장을 통한 반덤핑 조치 회피가 운영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소규모 사업자와의 수출 경쟁력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부 기업이 보세공장을 통해 덤핑방지관세 부담을 피하는 반면 다른 기업은 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이어진 정책 제언과 종합토론에서는 허경욱 태평양 고문이 좌장을 맡았고, 발표자와 토론자 외에도 김태황 명지대학교 교수와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가 참여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보세공장이 가공무역과 수출을 지원하는 중요한 제도인 만큼 그 순기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반덤핑 조치 무력화의 통로로 사용된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토론에서는 보세공장을 통해 재수출하는 경우라도 이는 엄연히 산업 피해를 유발한 저가 덤핑 물품을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므로 과세 보류 상태를 유지하다가 아무런 제재 없이 수출이 이뤄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국내 산업에 대한 무역구제 조치가 보세공장을 통해 사실상 무력화된 구조가 지속될 경우 국내 산업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무역구제 제도의 실효성이 저하될 수 있으며, 이 문제는 비단 철강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무역구제 제도 전반의 신뢰성과 관련된 엄중한 문제로서 다른 산업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외국의 제도를 참고해 관세법 또는 하위 법령에 무역구제 조치 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보세공장 운영을 제한할 수 있는 명시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는 한편, 변화하는 통상 환경에 맞춰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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