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은 여기에서 끝난다(The buck stops here!).'
생뚱맞은 계엄 선포로 나라를 대혼란에 빠트린 전직 대통령 탓에 좋은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이 문장만큼 공직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표현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의 책임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말은 장삼이사(張三李四)도 하기 힘들다. 비난이 쏟아지면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중차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공직자라면 더 그렇다. 정책의 실패 혹은 오류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책임은 곧 자리를 거는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름지기 좋은 공직자라면 마땅히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이 말 속에 담긴 진의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벌써 3주째다. 논란의 도화선은 지난달 22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다. 이 원장은 "(상품 출시를)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후회한다"고 토로했다. "증권사 배만 불린다"고도 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귀태(鬼胎)', 즉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상품이라는 게 발언의 골자다. 이 원장의 발언 이후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공공의 적’이 됐다. 코스피를 ‘도박장’으로 만든 주범이란 낙인도 찍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루 사이에도 구조상 최대 60%의 수익과 손실을 오가는 상품은 우리 증시에서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흡사 '잡코인'처럼 대박과 쪽박의 심리를 묘하게 부추긴다. 10조원이 넘는 돈이 이 상품에 일시에 쏠린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이 상품 등장 이후 증시 변동성도 커졌다. 물론 이게 선명한 인과관계를 갖는 것인지 오비이락(烏飛梨落) 인지는 정밀하게 분석해봐야 할 문제다.
주목할 대목은 이 원장의 발언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바로 책임 소재 문제다. 그가 "상품출시를 막았어야 했다"고 말한 순간 사람들은 '막았어야 할 대상이 어디냐'에 주목했다. 전직 금융 관료는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고, 상품 출시는 다른 누군가가 주도한 것이란 늬앙스를 풍기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장에선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야당은 정부를 겨냥해 연일 책임론을 제기했다. 청와대 정책실장도 책임론에 휘말렸다. 금융위, 금감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증권업계에서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를 두고 '고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다들 자기 조직에 책임론의 불똥이 튀지 않게 하려 애썼다.
급기야 어제(15일)는 대통령까지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 동석한 이 원장에게 "최근에 삼성·하이닉스 ETF 때문에 많이 당하고 계신 모양이던데…"라고 말을 건넸다. 이 원장은 "시장관리자로서 책임이 있어서 책임을 달게 받고 있다"고 답했고, 이 대통령은 "보완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질책이나 문책 대신 문제 해결을 요구한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출시 책임 공방은 일단 물밑으로 내려갔다. 대신 어떤 보완대책이 나올 것인가로 프레임이 전환되는 분위기다. 정부도 조만간 단일종목 레버리지 후속 대책을 내놓는다. 대통령이 "보완"을 얘기했기에, 상품 폐지보다는 개인투자자의 과도한 베팅을 막을 장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완 대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증시 변동성을 얼마나 줄일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 쪽박보다는 대박에 투자자들은 맛들린 상황이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제한이 가해진다면, 해외로 다시 눈길을 돌릴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환율을 자극할 수 있다. 정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도입한 최초의 목적도 환율 안정이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더 있다. 만약 보완대책 발표 이후에도 증시가 널뛰기를 지속한다면? 다시금 책임론이 고개를 들 것이다.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또 다시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는 말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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