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산업단지, 전북이 기회를 잡으려면

  • "몫 나누기 아닌 기능 설계"

김하은 전북발전협회 연구개발위원장사진전북대
김하은 전북발전협회 연구개발위원장. [사진=전북대]

호남권 반도체 구상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전북은 주도권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지역 간 몫 나누기나 소외감의 언어로만 풀어서는 안 된다. 이미 산업 구상의 무게중심이 다른 축으로 기운 상황이라면, 전북이 해야 할 일은 경제성과 정책 논리를 갖춘 재진입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AI 반도체는 제조업, 데이터 산업, 전력 인프라, 첨단 서비스 산업의 배치를 함께 바꾸는 기반 산업이다. 전북의 과제는 단순 유치가 아니라, 이 산업 안에서 맡을 수 있는 기능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AI 반도체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와 요구 조건이 다르다. 대규모 연산 성능, 전력 효율, 데이터 이동 속도, 발열 관리, 첨단 패키징과 테스트 역량이 동시에 필요하다. 설계, 생산, 후공정, 실증, 데이터센터 활용도 따로 움직이기 어렵다. 공장 부지만 확보한다고 경쟁력이 생기지 않는다. 전력망, 냉각 인프라, 용수, 물류, 연구개발, 전문 인력이 맞물려야 하며, AI 반도체 산업단지는 단순 제조단지가 아니라 에너지와 데이터, 제조와 연구가 결합된 복합 거점으로 봐야 한다.

전북은 이 지점에서 다시 승부를 걸 조건이 있다. 새만금은 대규모 용지 확보가 가능하고, 기반시설을 장기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재생에너지와 전력 산업, 기존 제조업 기반을 함께 엮을 여지도 있다. AI 반도체 산업에서는 생산능력 못지않게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전력 효율이 중요하다. 데이터센터, 후공정 시설, 테스트베드를 함께 고려하면 전북은 수도권의 보조 입지가 아니라 독자적인 산업 기능을 설계할 수 있는 지역이다.

전북의 대응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산업정책은 호소가 아니라 설계로 움직인다.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공장 유치를 성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생산기능만 지역에 놓이고 연구개발, 투자 판단, 핵심 인력 운용은 외부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역이 부지와 기반시설 부담을 떠안고도 고부가가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 전북이 요구해야 할 것은 공장 한 동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안에서의 기능이다.

AI 반도체 전 분야를 한꺼번에 끌어안겠다는 방식은 현실성이 낮다. 대신 전력반도체, 첨단 패키징, 테스트·검증, 데이터센터 연계 산업, 열관리 부품, 장비·소재 공급망처럼 전북의 조건과 맞는 분야를 선별해야 한다. 여기에 지역 대학과 직업교육기관을 연결한 인력 양성, 중소·중견기업의 공급망 편입, 공공 연구기관과 기업의 공동 실증체계를 붙여야 한다. 

이제 전북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중앙정부를 향한 문제 제기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북이 맡을 수 있는 산업 기능을 숫자와 계획으로 제시해야 하며 전력, 용수, 부지, 인허가, 인력 공급, 연구개발 지원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고, 기업이 들어올 조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대학, 연구기관, 기업, 지자체가 참여하는 협력체계도 서둘러야 한다. 기업의 비용을 낮추고, 기술 실증을 빠르게 하며,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때 힘을 얻는다.

AI 반도체 산업단지의 성패는 투자 규모보다 핵심 기능을 얼마나 지역 안에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전북은 더 이상 주변적 입지로만 머물 필요가 없다. 새만금의 공간성, 에너지 인프라 확장성, 제조업 기반을 감안하면 전북은 AI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기능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설계다. 전북이 그 논리를 정교하게 만들 때, 유치 주장은 지역의 요구를 넘어 국가 산업전략을 보완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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