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BTS가 열고 전통시장이 증명한 관광의 미래

방탄소년단 글로벌 팬들이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에서 BTS THE CITY ARIRANG BUSAN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파라다이스
방탄소년단 글로벌 팬들이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에서 BTS THE CITY ARIRANG BUSAN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사진=파라다이스]

무대 위 화려한 조명이 꺼지자 수만명의 글로벌 팬덤은 도심 대형 쇼핑몰 대신 부산의 낡은 골목장터로 향했다. 방탄소년단(BTS) 공연 주간, 국내 한 카드사가 집계한 외국인의 부산 전통시장 결제액은 직전 주보다 99.8% 폭증한 반면, 백화점·대형마트 결제액 증가율은 3.1%에 머물렀다. 글로벌 관광객의 지갑이 대기업 자본이 아닌 지역 소상공인을 향해 맹렬히 열린 것이다. 

과거 외국인 단체 관광객은 전세버스를 타고 면세점을 휩쓴 뒤 대형 쇼핑몰을 도는 획일적인 코스에 갇혀 있었다. 짧은 일정 속에 유명 쇼핑 시설을 점찍듯 둘러보고 떠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K팝 팬덤은 다르다. 공연장 밖으로 나와 비좁은 시장 골목을 걷고, 주민들이 이용하는 허름한 식당에서 국밥을 뜬다. 이들은 가장 한국적인 일상 그 자체를 소비하고 있다. 번듯한 마천루보다 날것의 삶이 녹아있는 로컬 생태계가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가장 강력한 킬러 콘텐츠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러한 소비 흐름은 그동안 랜드마크 조성에만 매달려 온 지방자치단체들의 관행에 대한 경고다. 관광산업 육성 명목으로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 건물을 짓고 출렁다리를 놓는 하드웨어 중심의 낡은 공식을 이제는 폐기해야 한다. 외국인이 굳이 부산의 낡은 시장통을 찾은 이유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지역 주민과 호흡하며 쌓아온 고유한 생활문화, 즉 대체 불가능한 '사람 냄새'가 거대 인프라보다 압도적인 비교 우위에 있음을 통계가 웅변하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가 임계점에 달한 현실에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주 인구 감소의 대안으로 체류형 방문객을 늘리는 '생활인구' 확대를 내세운다. 청년이 떠나고 상권이 무너지는 지방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면 관광객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게 만들어야 한다. 강릉의 커피거리,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고유의 역사와 서사가 밴 공간으로 발길을 이끄는 것이 지역 활성화의 근본적인 해법이다.

문제는 현장의 낙후된 수용 태세다. 호기심에 이끌려 시장을 찾은 외국인들이 낡은 결제 시스템과 불투명한 상술 탓에 발길을 돌리는 일이 허다하다.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거나 가격표조차 없는 식당, 외국어 메뉴판의 부재와 열악한 위생 환경은 K콘텐츠가 애써 끌어모은 긍정적 이미지를 순식간에 갉아먹는다. 한번 실망한 관광객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불만의 입소문은 애초의 기대보다 훨씬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거창한 마스터플랜보다 시급한 것은 기본기의 혁신이다. 외국인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다국어 안내를 확충하고 정찰제를 뿌리내려야 한다. 상인들이 글로벌 간편결제 시스템을 속도감 있게 도입하고 통번역 앱을 능숙하게 활용하도록 돕는 소프트웨어 지원이 절실하다. 나아가 낡은 규제에 갇힌 관광진흥법의 과감한 개정을 통해 골목 상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관광 새마을운동' 차원의 전방위적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임시 안내소 하나 세우는 생색내기 행정에서 벗어나, 방문객의 동선이 동네 경제로 막힘없이 스며들 수 있는 실질적 토대를 닦아야 한다.

무대 위의 열기는 며칠이면 식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골목의 일상은 영원하다. 부산 전통시장에서 확인한 소비 동향은 인구 소멸에 신음하는 지역 사회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했다. K콘텐츠가 뚫어놓은 이 거대한 물길을 지역 경제의 튼튼한 동맥으로 이어붙이는 치밀한 정책적 안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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