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유러피언'에 가격·현지화 속수무책
2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차량(IFV)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유럽안전보장행동(SAFE)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을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루마니아군이 운용 중인 노후 보병전투차량을 교체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총 사업비 33억3700만유로(5조9000억원)가 책정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라인메탈 등이 최종 사업자 선정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루마니아 국방부가 제시한 '완전 현지화' 조건을 충족하는 제안도 내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 현지 생산 비중을 80%에서 장기적으로 9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반면 라인메탈은 40% 수준의 현지화율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루마니아 정부는 라인메탈의 손을 들어줬다.
업계에서는 유럽연합(EU)의 역내 방산 산업 육성 정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유럽 안보를 유럽 산업 기반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이른바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가 확산하면서 역외 기업의 수주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중동 시장에서도 자국 우선주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을 통해 국방비의 50% 이상을 자국 방산업체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레드백, 현대로템의 K2 전차, LIG넥스원의 L-SAM 등 국내 방산업체들이 추진 중인 중동 대형 사업에서도 현지 생산과 산업 협력 여부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K-방산 수출 공식 재정비 서둘러야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요구가 강화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각국이 방산 자립의 중요성을 절감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유럽 국가들은 생산능력 부족으로 한국산 무기에 의존했다. 빠른 납기와 합리적인 가격은 K-방산이 유럽 시장을 파고드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로 방산의 중요성을 체감한 유럽 국가들은 생산시설 확충과 공동 조달 체계 구축에 나서면서 한국 방산이 누렸던 '갭필러' 역할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럽 방산업체들이 생산능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K-방산이 부족한 물량을 채우는 대안 역할을 했다"며 "하지만 최근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경쟁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유럽의 방산 강국인 독일은 올해 총 방위지출을 1082억유로(약 170조원) 규모로 확대하며 자국 방산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프랑스 또한 방산 투자 확대와 생산 능력을 확충하는 상황이다. K-방산이 유럽과 중동에서 선전하기 위해선 색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현지 협력 활성화와 함께 이종산업 간 합종연횡을 확대하는 등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남명렬 고려대학교 K방산센터장은 "이제는 단순히 무기를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현지 생산시설 구축과 산업 협력 모델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며 "방산뿐 아니라 에너지, 인공지능, 정보통신 기술과 같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과 연계한 패키지형 협력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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