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의 모시모시] 손정의의 바둑판...AI 전쟁은 10년 전에 시작됐다

2016년 여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3조3000억엔에 인수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신회사 사장이 왜 반도체 회사를 사는가."
"너무 비싸게 산 것 아닌가."
"시너지 효과가 무엇인가."
 
질문이 쏟아졌다. 손정의의 대답은 의외였다.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에 돌을 놓은 것이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50수의 의미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오늘날 세계 AI 산업의 중심에는 세 회사가 있다. 오픈AI, 엔비디아, ARM이다. 손정의는 이미 10년 전에 그 가운데 하나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픈AI에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선 손정의의 인수합병 방식을 '포석형 M&A'라고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인수합병을 시장점유율 확대나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손정의의 방식은 다르다. 그는 현재를 사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를 먼저 그리고 현재를 움직이는 사람에 가깝다. 실제로 소프트뱅크의 역사를 보면 일관성이 있다. 1990년대에는 야후에 투자했다. 2000년대에는 알리바바를 키웠다. 모바일 시대에는 통신망을 장악했다. 그리고 AI 시대가 오자 ARM과 오픈AI를 선택했다.

겉으로는 투자 대상이 계속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항상 플랫폼과 인프라를 동시에 잡으려 했다. 인터넷 시대에는 야후와 통신망이었고 AI 시대에는 오픈AI와 반도체를 품었다.
 
손정의는 기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바꿔놓을 세상을 먼저 본다. 그래서 일본 재계에서는 그를 기업가라기보다 미래 설계자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사회가 원래 이런 유형의 경영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 문화의 핵심은 안정과 축적이다. 도요타는 수십 년에 걸쳐 관계를 다지며 계열사를 편입했고, 일본 기업들은 대체로 급격한 변화보다 점진적 진화를 선호해 왔다. 실패 가능성이 큰 모험보다는 검증된 길을 택하는 것이 일본식 경영의 특징이다. 그런 일본에서 손정의는 늘 이질적인 존재였다.
 
재일한국인 3세 출신인 그는 일본 주류 사회의 문법 밖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부터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구상했고, 일본 대기업 특유의 연공서열이나 조직문화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일본 기업인 가운데 드물게 "10년 후", "30년 후"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손정의는 창업 초기부터 300년 기업론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소프트뱅크가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일본 언론이 최근 들어 손정의를 다시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무모한 승부사로 보였지만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의 장기 전략이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길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위워크 투자 실패는 대표적 사례다. 소프트뱅크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신화가 끝났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손정의는 후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 이후 더욱 AI에 집중했다. 최근 소프트뱅크의 행보를 보면 단순한 투자회사를 넘어 AI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에 나서고 있다. 로봇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오픈AI와 함께 새로운 AI 생태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AI 산업 자체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이다.
 
일본 경제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30년'을 이야기해 왔다. 그 사이 일본 기업들은 안정적인 경영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는 데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소니와 파나소닉, 도시바와 샤프가 세계 전자산업을 이끌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플랫폼 혁명에서는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가져갔다. 그런 점에서 손정의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성공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오픈AI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할지도 알 수 없다. 중국 기업들이 AI 로봇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ARM의 전략이 끝까지 통할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 AI 패권 경쟁이 벌어지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손정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꿈은 어제 시작된 것이 아니다. 10년 전 ARM 인수 때 이미 시작됐다.
 
바둑에서는 지금 놓는 한 수가 승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짜 고수는 현재의 한 수보다 아직 오지 않은 50수를 먼저 본다. 손정의가 지금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차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의 승부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과 상상력의 싸움이다. 손정의는 누구보다 먼저 미래에 도착한 뒤, 그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려 하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소프트뱅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소프트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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