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5년 뒤, AI는 스스로 작동한다

  • AI 프롬프트가 사라질 날 멀지 않았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인터넷이 나온 지는 벌써 60년 가까이 됐고 웹이 등장한 지도 근 40년에 이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세상을 바꾼 것은 인터넷 자체가 아니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쓰지만 초기 인터넷은 접속 자체가 어려웠고 명령어와 복잡한 설정을 구사해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일반인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를 체감하기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었다. 1980년 후반까지도 그랬다.

여기에 관한 일화가 있다. 필자가 30대 초반 카이스트 교수 생활을 막 시작할 때 일이다. 30분 정도는 코딩을 해야 인터넷에 접속 가능했던 시절이다. 코딩에 한 군데라도 실수가 있을 경우에는 접속에만 한 시간 걸렸다. 점심 시간 임박해서 접속 시도하다 보면 가끔 12시를 넘길 수 있는데 12시 5분쯤 교수식당에 도착하면 이구동성으로 오늘은 왜 늦었냐는 인사를 듣곤 했다. 그래서 접속 지연으로 그랬다고 설명하면 교수들은 “인터넷이 도대체 뭐야”, “내 생전엔 그거 쓸 일은 전혀 없을 거야”는 식으로 대했다. 그러다 그후로 딱 5년이 흐르자 그들 모두 인터넷 사용자가 됐다. 다름 아닌 웹 덕분이다. 아직도 인터넷과 웹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이때부터 IT 세계에서는 5년 앞을 내다보는 게 불가능하다는 일종의 격언이 생겼다. 

지금은 상황이 불투명하지만 해오던 일을 꾸준히 계속 해나가면 5년 뒤에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단 뜻도 된다. 10년이면 변하던 강산이 기술주도 시대에 와선 5년으로 바뀌었다. 한때 재계 100위 내지 200위권 밖으로 하향 길을 걷던 삼성과 인텔이 최근 20위권 내로 급부상하는 배경도 이와 같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빅테크들은 지금도 벤처 기업으로 자처한다. 그들조차도 언제 어느 때 한순간에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불현듯 눈앞에 닥칠 수 있는 게 IT 분야다. 작금의 상황 또한 그렇다. 철천지원수로 잘 알려진 애플과 삼성의 지난날 대립과 법정 분쟁을 회상해보라. 애플은 인텔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놀라운 일은 지금 와서는 애플이 삼성과 인텔에 먼저 손 내밀며 언제 그랬냐는듯 두 회사에 반도체 생산을 전격 부탁할 줄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나. 이런 예기치도 않았던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분야가 바로 IT다. 살아 남기 위해선 적과 동지 구분 않는 세상이 그곳이다.

인터넷의 복잡성을 인간에게서 감추고 클릭이라는 간단한 행위로 일상의 도구처럼 인터넷을 탈바꿈해 놓은 게 바로 웹이다. 인터넷이 30분 코딩이라면 웹은 단 1초 클릭이다. 혁신의 본질은 기술을 끌어내려 인간 눈높이 수준으로 맞춰주는 접점까지 오게 만드는 데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인간이 기계에 적응해야 하는 수준에서는 혁신이 없던 뜻이다. 기계가 인간에게 적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역전시켜야 세상이 비로소 바뀔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게 혁신의 본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관찰해보면 지금 AI 산업은 인터넷의 초창기 출범 단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오늘날 생성 AI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전문가 중심 기술에 가깝다. 프롬프트를 잘 써야 하고 AI 도구마다 특성이 다르며 응답 결과의 신뢰성 또한 완전하지도 않고 천차만별이다. 설상가상으로 사용자가 AI 도구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 사용자들은 어느 도구에 의존해야 할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AI는 아직 웹 이전의 인터넷과 유사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복잡성이 일거에 감춰졌듯이 AI 존재가 감추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급의 기술이 1990년대 초 웹처럼 제2의 팀 버너스리와 같은 이에 의해 공개적으로 등장하여 일상 유틸리티 수준에서 거의 무상 제공돼야 한다는 뜻이다. 말로 업무가 처리되고 정보가 자동 요약되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라.

이러한 혁신의 특징은 늘 기존 강자를 무너뜨리며 나타났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과거 메인프레임 기업들은 PC 혁명을 과소평가했고 전통적 휴대전화 강자들은 스마트폰 혁명에 늦게 대응함으로써 퇴출을 자초했다. 이런 변화의 공통점은 무척 단순하다. 인간 경험 자체를 우선시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사용자로 하여금 기술을 가장 쉽게 체감하게 만든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원리다. 소비자는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얼마나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온갖 관심을 쏟는 까닭이다. 이는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빅테크들 역시 유사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AI 산업이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고가 GPU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대대적 전환점은 인간 경험의 단순화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는 AI 경쟁을 칩 성능 위주로 보고 있어 GPU 가속력, 메모리 차선 수, 초미세 공정이 산업의 핵심처럼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장악해낸 기업에게 시장 주도권은 넘어갈 것이라는 중대한 원리를 망각해서는 도태되고 만다. 이는 삼성과 인텔과 같은 관행적 사용자 접점 경시 기업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누구든지 노키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까닭이다. 지난 5년간 이 두 기업의 부진 역시 이런 맥락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칩 제조 역량을 갖고 있고 인텔 역시 CPU칩 시장을 수십년 지배해왔다. 그러나 AI 시대에 칩을 잘 만드는 기업에게 돌아갈 몫은 인간-AI 접점에 초점을 두는 기업들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방식이 과연 얼마 동안이나 유지되겠는가 한번 생각해보라. 앞으로는 AI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인간의 언어와 행동을 AI가 자연스럽게 이해하며 뒤에서 조용히 작동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날 프롬프트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본다. 지금으로부터 5년쯤 뒤로 보고 있다. 그런 날이 온다고 가정해보면 전통적 기업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중대한 프롬프트에 응답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프롬프트가 없어진단 말은 AI 존재를 사용자들로 하여금 의식하지 않게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AI 플랫폼들이 AI 존재 자체를 감추게 만드는 기술의 첫 단추는 과연 어디일까. 그들이 AI란 존재를 사용자들로부터 숨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그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코 AI의 먹이인 데이터에 있을 것으로 본다. 고객은 자신에게 유익한 데이터를 어느 기업이 제공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돼 있을 뿐 그걸 제공하는 AI 도구 간 특징이나 차이점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어느 도구가 코딩용이고 또 어느 도구는 군사용이라는 말에는 관심이 없다. 고객이 만족하는 지점은 응답 결과지 다른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이는 고객에게 데이터 만족도를 높여주는 기업에게 미래가 있단 말과 같다. 그러면 지금의 데이터 기업은 어딜 가리키겠는가. 그것은 단연 구글과 아마존이다. 구글의 기존서적 온라인화 또는 아마존이 온라인 책방으로 1990년대 중반에 각기 출범했으나 오늘날 그들은 데이터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완전히 성공한 기업이 됐다. 구글은 이름 그대로 10의 100승, 즉 세상에 노출된 데이터의 대부분을 현재 장악하고 있고 아마존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세계 주요 기관 데이터 격납고 역할을 도맡고 있다. 전 세계 각국 정부 데이터의 대부분이 아마존 클라우드를 이용한다. 그러나 데이터 장악력이 강한 구글과 아마존에게도 데이터 만족도 면에서 허점이 없을까. 많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여기가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도 일반적 데이터에 관한 장악력이 강할 뿐이지 아직 고객에 특화된 데이터, 즉 범주별 분화된 데이터에 강점을 갖고 있지는 않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다. 특정 분야, 즉 예를 들면 스포츠 분야에 특화된 데이터 기업은 아니란 말이다. 고객의 기대치가 그런 특화 데이터 기업에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뜬다면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가 심지어 구글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다.

삼성도 그런 숙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삼성에게 위기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는 특이한 지점이다.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은 결국 메모리칩인 까닭이다. 그 최강자가 바로 삼성이 아니던가.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당분간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심지어 인텔 애플 AMD 퀄컴 구글 엔비디아와 같은 전통적 계산장치칩 강호들과 오라클 화웨이 알리바바 같은 데이터센터 중점 기업들까지도 자체 메모리칩 설계 및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까닭이다. 남의 칩을 갖다 쓰는 대신 자체 사업에 효율성이 특화된 메모리칩을 직접 독자 설계하겠다는 원대한 의도다. 그러면 설계는 혼자 하더라도 생산은 어디서 할까. 

막대한 생산 시설이 필요한데 그걸 과연 어느 공장에서 제작하겠는가. 그러니 삼성에게 기회가 되는 것이다. 삼성 외에도 TSMC 마이크론 창신(중국) 난야(중국) 등 메모리칩 생산 대규모 공장 보유 기업들이 AI 붐이 지속된다면 향후 2~3년간 직접적 수혜자가 될 것은 분명하다. 그와 더불어 데이터센터가 증설될수록 그런 특수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자족함이 없이 삼성이 미래를 보고 더 진취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데이터 특화 시대에 대비하겠노라는 특유의 큰 꿈을 가져야 한다. 그런 비전에 상응하는 전략을 갖춤과 동시에 금상첨화격으로 늘 강조하는 메모리 윗단 연결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강화된 면모까지도 갖출 수 있다면 그 미래는 창대할 것이다. 그러면 데이터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비저너리 현자를 삼성이 과연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데이터 안목은 수십년간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서 내부 인력에 의해 저절로 확보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IT 종합 기업으로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엔비디아 애플을 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IT 강자 자리를 넘보겠다면 새 시대를 맞을 데이터 비전이 무엇보다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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