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P 데스크 칼럼] 소칼로의 밤, 아리랑의 여운

현지 시간으로 지난 6일 오후, 검은 차량 행렬이 멕시코시티 중심부로 천천히 들어섰다. BTS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시의 공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공항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팬들이 몰려들었고, 보라색 응원봉을 든 채 몇 시간씩 자리를 지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차량이 이동할 때마다 휴대전화 불빛과 함성이 도로를 따라 길게 번졌고, 경찰 오토바이가 길을 열었으며, 경호 차량들이 뒤따랐다. 외국 정상이 방문할 때나 볼 법한 이동 동선이었다.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소칼로 광장은 권력의 공간이다. 대통령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거대한 국기가 바람을 가르며 흔들리는 이곳에는 혁명과 독립, 시위와 군중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멕시코라는 국가의 심장에 가장 가까운 장소다. 그 심장에서 이번 주, 조금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보라색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대통령궁 앞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얼굴에 태극기를 그렸고, 누군가는 서툰 한국어로 "사랑해요"를 외쳤다. 스페인어와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채 도시는 마치 국가적 축제의 전야처럼 들끓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궁 발코니에 멕시코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BTS를 향해 5만 명 넘는 군중이 일제히 팔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국가 정상 방문 때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6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BTS 월드투어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팬덤 ‘아미ARMY’가 운집해 있다 팬들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BTS 멤버들이 대통령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멕시코시티 정부 공보실 제공·로이터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멕시코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BTS 월드투어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팬덤 ‘아미(ARMY)’가 운집해 있다. 팬들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BTS 멤버들이 대통령궁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멕시코시티 정부 공보실 제공·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시티는 지난 3월 BTS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도시였고, 한 달간 71만 4,212명이 BTS 음악을 스트리밍했다.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 스타디움 3회 공연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으며, 현지 상공회의소는 공연으로만 약 18억 6,000만 페소, 우리 돈 약 1,400억 원에 가까운 경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숫자는 열기의 크기를 설명할 뿐, 그 온도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진짜 장면은 밤에 시작됐다. 7일 저녁 스타디움 조명이 꺼지자 짧은 정적 뒤 어디선가 한국 전통 국악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수만 명이 숨을 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던 그 순간, 어둠을 가르며 첫 비트가 터졌다. 신곡 '훌리건'이었다. 6만 5,000명의 군중이 동시에 폭발하듯 뛰어올랐고, 응원봉의 은빛 물결이 밤하늘을 뒤덮었으며, 스타디움은 거대한 떼창으로 흔들렸다. 어린 소녀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고, 건장한 청년 팬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후렴구를 외쳤다. 공항 인근이라 항공기 이착륙 소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굉음조차 군중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공연의 절정은 앨범 '아리랑' 수록곡 'Body to Body' 중간이었다. 무대의 열기가 잠시 숨을 고르던 그 순간, 처음에는 몇몇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그 노래는 곧 파도처럼 번졌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멕시코의 밤하늘 아래, 스페인어를 쓰는 수만 명의 청춘들이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아리랑을 떼창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낯설고, 묘하게 슬펐다. 단순히 외국 노래를 따라 부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했던 노래를 뒤늦게 발견한 사람들 같았다. 

이 열기는 사실 지난주 미국 플로리다 탬파에서 이미 예고됐다. 탬파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세계 문화 수도가 아니다. 인구 40만 명 규모의 도시이며, K-pop의 전통적 핵심 시장으로도 꼽히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BTS는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 3회 공연을 모두 매진시켰고, 호텔은 순식간에 동났으며, 도시는 공연 기간 내내 이른바 '슈퍼볼급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더욱 흥미로운 장면은  객석의 얼굴들이었다. 흔히 상상하는 '10대 여성 팬덤'만 있지 않았다. 백발의 노년 여성, 어린 자녀의 손을 잡은 가족 단위 관객, 히스패닉과 백인과 흑인과 아시아계, 건장한 체격의 남성 팬들까지 뒤섞여 있었다. 미국 현지 팬들조차 "이건 아이돌 콘서트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축제 같다"고 말했다. 

왜 지금 아메리카 대륙은 이토록 BTS와 K-pop에 열광하는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다. 유튜브와 틱톡,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플랫폼 시대,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 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BTS 특유의 친밀감.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 정서의 공명에 있다.

라틴 문화는 원래 강렬한 리듬과 집단적 열기 위에 서 있다. 레게톤과 살사, 거리 축제와 응원 문화는 슬픔과 환희를 동시에 폭발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 역시 '흥'이라는 집단적 감정 에너지를 중심에 둔다. 한과 흥, 절제와 폭발이 교차하는 한국 특유의 감정선이 라틴의 피에스타 문화와 놀라울 정도로 같은 주파수 위에서 움직인다. 언어는 달라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리듬은 같았던 것이다.
 

여기에 BTS라는 존재가 가진 서사가 더해진다.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세계 문화의 중심에서 출발한 팀이 아니다. 한때 변방 취급을 받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 세계 정상에 오른 존재들이다. 이 서사는 오랫동안 서구 문화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라틴아메리카 대중에게 강한 감정적 동질감을 준다. 또 다른 주변부 출신의 성공 서사 속에서 자신들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멕시코 청춘들이 한국어로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행위는 단순한 팬심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주류 밖에 있었던 감정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과정에 가깝다. 

'아리랑'은 원래 떠나는 사람의 등을 바라보며 부르던 노래였다. 식민과 전쟁, 가난과 이산의 세월 속에서 한국인은 이 노래를 불렀다. 살아남기 위한 체념과, 그래도 다시 걸어가야 한다는 의지가 함께 담긴 민요였다. 한 세기 전, 한국은 세계 문화의 수입국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음악을 따라 불렀고, 서구의 중심을 동경했으며, 한국어는 세계의 변방 언어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 그 노래가 태평양을 건너 지구 반대편에서 울리고 있다. 한류의 진짜 의미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로 수출됐다는 데 있지 않다. 한때 너무 작고 멀어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한 나라의 감정이, 이제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심장까지 흔들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이 이번 멕시코의 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이유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왼쪽과 멤버들이 6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BTS는 7·9·10일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에서 전석 매진된 공연을 연다 AFP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왼쪽)과 멤버들이 6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BTS는 7·9·10일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GNP 세구로스에서 전석 매진된 공연을 열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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