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마른 사우디…무차별 스포츠 투자 접고 '선택과 집중'

  • 유가 하락·무리한 지출로 재정 적자

  • 'LIV 골프' 누적손실 10억 달러 넘어

  • 불확실성 큰 스포츠이벤트 줄이고 AI데이터센터·엑스포에 역량 쏟기로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투자 전략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LIV 골프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의 투자 전략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LIV 골프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최근 수년간 글로벌 스포츠 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격적인 행보였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주도하에 탈석유 국가 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내걸고 스포츠를 국가 경제 다각화와 이미지 쇄신의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이 같은 사우디의 대규모 투자를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줄곧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스포츠워싱이란 인권 침해나 부패, 억압적인 정치 체제 등 국가의 어두운 이면을 스포츠 이벤트의 화려함으로 덮어버리고 국제적인 이미지를 세탁하는 행위를 뜻한다. 2015년 독재 국가 아제르바이잔이 제1회 유러피언 게임을 유치하며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등장한 이 개념은 이후 러시아와 카타르를 거쳐 사우디에 이르며 그 절정을 맞이했다.

그러나 사우디의 투자 기조도 최근 들어 뚜렷한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구단 인수, 골프 생태계를 뒤흔든 LIV 골프 창설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뻗어나가던 오일머니가 전방위적인 지출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규모 투자가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과 투자 효율성을 따지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하며 주목받았던 사우디 프로축구리그SPL는 지출 통제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하며 주목받았던 사우디 프로축구리그(SPL)는 지출 통제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골프 돈줄 끊고…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도 '백지화'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투자 전략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LIV 골프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독점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2022년 출범한 LIV 골프는 사우디 스포츠 투자의 상징이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계약금과 상금을 내걸었으며 4년간 선수 이적료와 운영비 등으로 50억 달러(약 7조380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업적 성과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 내 TV 시청률 부진 등으로 중계권과 같은 부가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으며 누적 손실만 10억 달러(약 1조48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IF도 결단을 내렸다. 지난달 30일(한국시간) 미국 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PIF는 올 시즌을 끝으로 LIV 골프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내부 지배구조 역시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스포츠 비즈니스 저널은 LIV 골프 창설의 핵심 인물이자 그간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야시르 알루마얀 PIF 총재가 LIV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고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골프만이 아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영입하며 주목받았던 사우디 프로축구리그(SPL)는 지출 통제에 나섰다. PIF는 자신들이 보유하던 SPL 4대 명문 구단 중 하나인 알 힐랄 지분 70%를 민간회사 킹덤홀딩스에 매각했다. 아울러 리그 전체 구단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이번 시즌부터 구단 총수입 중 80%를 지출 상한선으로 두는 엄격한 재정 규정을 도입했다.

자금 축소 흐름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우디가 동계 스포츠의 불모지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인공 눈 리조트를 건설해 치르겠다던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은 막대한 담수화 설비 비용 등의 한계에 부딪혀 무기한 연기됐다. 10년 장기 계약을 맺었던 사우디 스누커 마스터스는 2년 만에 개최가 취소됐으며 여자프로테니스투어(WTA) 파이널스 개최 연장과 2035년 럭비 월드컵 유치 계획도 무산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12년 장기 계약을 맺고 내년부터 개최하기로 했던 e스포츠 올림픽 게임즈(OEG) 역시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파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수출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유가 상승 수혜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수출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유가 상승 수혜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쪼그라든 현금·적자…'돈 먹는 하마' 스포츠부터 칼질

사우디가 전방위로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배경에는 복합적인 재정 압박이 있다. 자금줄인 PIF부터 경고등이 켜졌다. WSJ,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PIF 운용 자산은 9400억 달러(약 1388조원)에 달하지만 당장 융통할 현금 보유액은 4년 만에 최저치인 150억 달러(약 22조원)로 쪼그라들었다. 핵심 수입원 아람코의 배당금이 3분의 1가량 줄었고 미래 도시 네옴 등 대규모 개발에서 80억 달러(약 12조원)의 자산 가치 하락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쓸 돈은 줄고 적자는 불어났다. 2022년 유가 상승에 힘입어 8.7% 성장했던 사우디는 그 수익을 동력 삼아 대형 스포츠 프로젝트 투자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사우디 재무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 하락과 무리한 지출이 겹쳐 약 730억 달러(약 109조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현금이 말라붙자 누적 손실 10억 달러에 달하는 LIV 골프와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필요한 동계 아시안게임 등 상업성 없는 이벤트부터 과감히 쳐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외부 불확실성도 주요 변수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 등 중동 긴장이 고조되며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원유 수출의 핵심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유가 상승 수혜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아랍에미리트(UAE)마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를 선언하며 사우디 주도의 유가 통제력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연합뉴스·로이터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진=연합뉴스·로이터]
 
◆'가성비' 떨어진 스포츠워싱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우디의 스포츠워싱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저스틴 놀란 호주 인권연구소장은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Nine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려 했으나 오히려 LIV 골프 논란 등으로 전 세계의 비판적 시선을 끌어모으는 결과를 낳았다. 평판 관리 전략으로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제 전문가들은 이를 자본 논리에 입각한 영리한 재조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한 레윌락 러프버러대 스포츠경영학 교수는 지난 1일 BBC에 "203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사우디는 엄청난 인프라 건설 및 운영 비용에 직면해 있다. 정부가 자본을 재분배하고 스포츠 포트폴리오를 재평가하는 것은 타당한 수순"이라며 "지정학적 긴장과 건설 비용 상승으로 인해 과시성 스포츠 자산보다는 안보와 필수 인프라로 지출 우선순위가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닐 퀼리엄 영국 채텀하우스 연구원 역시 지난 1일 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재평가는 이미 내부적으로 진행 중이었으며 현재의 지정학적 위기를 명분 삼아 지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PIF는 최근 신규 5개년 운영 계획에서 "급속한 성장 단계를 지나 지속 가능한 가치 창출 단계로 전환하며 투자 효율성과 투명성, 거버넌스를 강화할 것"이라며 외형 확장 위주의 투자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러한 궤도 수정은 PIF의 '2026~2030년 신규 전략 보고서'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PIF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국내 사업 중심의 '비전 포트폴리오', 국가 핵심 자산의 '전략 포트폴리오', 글로벌 투자의 '파이낸셜 포트폴리오' 등 세 축으로 재편하면서 당초 핵심 투자 분야 중 하나였던 스포츠 항목을 아예 없애버렸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불확실성이 큰 신생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수익성이 담보된 첨단 산업이나 국가 차원의 파급력이 확실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2034년 월드컵 개최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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