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칸 AI 영화제① | 인간·문화·자연] 칸 AI 영화제가 한국과 이웃사촌이 된다 : WAIFF 서울과 박찬욱 감독

칸 AI 영화제 포스터
[칸 AI 영화제 포스터]

2026년 봄, 한국 영화계는 상징적 장면 두 개를 동시에 맞이한다. 하나는 프랑스 남부의 해변 도시 칸에서, 다른 하나는 서울의 초고층 빌딩과 극장가에서 펼쳐진다. 전자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국제영화제의 무대이고, 후자는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운 World AI Film Festival, 곧 WAIFF Seoul이다. 전통과 미래, 필름과 알고리즘이 같은 시기에 교차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일정상의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라는 예술이 문명 전환의 분기점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사건은 박찬욱 감독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일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다. 칸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영화의 미학과 윤리를 판정해 온 상징적 제도다. 그 정점에 한국 감독이 선다는 사실은, 한국 영화가 더 이상 변방의 신선한 발견이 아니라 중심의 기준을 논의하는 위치에 올랐음을 뜻한다.
 
심사위원장은 취향을 강요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미학과 가치관을 조율하는 자리다. 그 무게를 감당할 인물로 박찬욱이 선택됐다는 점에서, 세계 영화계는 한국 영화의 사유 능력과 미학적 성숙을 인정한 셈이다.
 
박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늘 인간 내면의 균열과 욕망, 윤리적 선택의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왔다. 기술적 완성도와 서사의 밀도, 그리고 미장센의 절제된 아름다움은 그의 작품을 세계 영화사의 한 축으로 세워 왔다.
 
그는 최근 “증오와 분열의 시대에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행위가 보편적 연대감을 만들 수 있다”는 취지의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은 칸의 전통이 지켜 온 공동체적 영화 경험을 환기한다. 영화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보는 예술이라는 원칙, 그것이 칸의 뿌리다.
 
그러나 서울 롯데월드에서 오는 3월 6,7일 열리는 WAIFF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은 영화의 도구인가, 동반자인가. 창작의 민주화를 확장하는 기술인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계산인가.
 
WAIFF Seoul 2026은 단기간에 1500여편의 출품작을 모으며 AI 기반 창작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과시가 아니다. 창작의 문턱이 낮아지고, 개인 창작자가 세계 시장을 향해 작품을 제출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는 증거다.
 
서울 WAIFF의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된 손승현 대표는 한국 1세대 VFX 슈퍼바이저다. 그는 수많은 상업영화와 글로벌 시리즈의 시각효과를 총괄하며 제작 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끌어올려 왔다. 그의 경력은 한국 영화가 기술과 예술의 균형 속에서 성장해 왔음을 보여준다.
 
WAIFF에서 그가 맡게 될 역할은 단순한 심사 운영이 아니다. AI 기술과 서사의 깊이를 동시에 평가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기준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윤리와 저작권, 데이터 출처, 창작의 진정성을 둘러싼 문제는 향후 AI 영화 산업의 존립을 좌우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대비를 본다. 칸은 셀룰로이드 필름의 전통을 상징하고, WAIFF는 알고리즘 기반의 창작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보완한다. 칸이 인간의 서사와 공동체적 감상의 가치를 지키는 제도라면, WAIFF는 그 서사를 확장하는 기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이다. 전통이 뿌리라면, AI는 가지다. 뿌리 없는 가지는 쓰러지고, 가지 없는 뿌리는 마른다.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도시에서 사전 행사 형식으로 열리는 AI 영화 프로젝트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아시아는 더 이상 콘텐츠 소비의 후발 주자가 아니다. 반도체, 플랫폼, 게임, 웹툰, 드라마가 공존하는 서울의 생태계는 기술과 대중문화가 동시에 강한 드문 사례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AI 영화가 폭발적 반응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서울은 기술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도시다.
 
그러나 속도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원칙이 필요하다. 기본과 상식, 그리고 창작 윤리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AI 영화는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면, AI는 인간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인간의 감성과 알고리즘의 계산이 충돌이 아니라 협업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영화 언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번 봄, 박 감독이 칸에서 심사의 기준을 논의하고, 서울에서 WAIFF가 AI 영화의 미래를 설계하는 장면은 하나의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은 더 이상 세계 영화의 변방이 아니다. 우리는 전통의 심사위원장을 배출하고, 동시에 미래의 영화제를 기획한다. 이는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영화는 늘 기술과 함께 진화해 왔다. 인쇄술이 문학을 확장했고, 카메라가 새로운 서사를 탄생시켰으며, 인터넷이 유통 구조를 바꾸었다. 이제 AI가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의 고통과 기쁨, 사랑과 선택의 이야기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전통의 칸영화제가 한국과 이웃사촌이 되는 순간, 우리는 묻게 된다. 인간·문화·자연이라는 오래된 질문 속에서, AI는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은 바뀌고 있고, 그 변화의 중심 무대 중 하나가 서울이며, 그 무대 위에 한국 영화가 서 있다. 전통과 혁신이 마주 보는 이 장면은 단지 한 해의 뉴스가 아니다. 그것은 문명사의 한 페이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