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기술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력을 나누는 제도다. 권력을 나누지 않는 정치, 견제를 불편해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위험해진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이 그런 꼴이다.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형법 개정안(이른바 '법 왜곡죄'),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재판소원제 도입)은 각각 따로 보면 제도 개선의 논리로 포장될 수 있다. 그러나 세 법안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 정치적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핵심은 단순하다. 사법부의 권위와 구조를 정치가 다시 설계하겠다는 시도다. '법 왜곡'이라는 개념은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았다. 판사의 해석과 판단을 사후적으로 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경우, 그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법관의 독립은 헌법적 가치다. 해석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형벌 규정은 자칫 정치권력이 사법 판단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대법관 증원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 수요 증가에 따른 인원 확대라는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시점과 정치적 맥락이 결합되면 의심은 커진다. 최고법원의 구성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판례의 방향, 법 해석의 흐름, 국가 질서의 기조와 직결된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최고법원의 구조를 손보는 관행이 굳어진다면, 법은 더 이상 안정적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 산물이 된다.
재판소원제 도입도 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기본권 보호 확대라는 명분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4심제'로 비칠 수 있는 제도 변경은 사법체계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다. 견제 장치인지, 판결을 다시 뒤집는 통로인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속도를 내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는 법안 각각의 타당성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권력 집중의 방향성이다. 입법권을 다수 의석으로 장악한 상태에서 사법 구조까지 재설계하려 한다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 개편은 제도를 위한 것인가, 권력을 위한 것인가.
동시에 국민의힘과 장동혁대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감정적 대응이나 정치적 계산만으로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제도적 위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상대를 향한 과격한 언어는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는 있어도, 중도층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역사는 권력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이 제도를 어떻게 다루었는 지는 오래 남긴다. 사법부를 흔드는 시도는 언제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권력은 언젠가 바뀐다. 오늘 유리한 구조는 내일 족쇄가 된다. 그렇기에 진짜 책임 있는 정치라면, 자신이 야당이 되었을 때도 수용할 수 있는 제도만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부가 아니다. 균형이다. 권력은 강할수록 절제해야 한다. 그 절제가 사라질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