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아리랑’은 무대 위에서 울렸다. 그러나 그 울림은 무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광장을 걷고, 거리의 간판을 읽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문화의 진짜 무대는 조명이 비추는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 전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K-헤리티지를 공연과 전시, 축제와 행사로 한정해 왔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전통을 보여주고, 관람객이 떠나면 막을 내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구조로는 문화가 지속되기 어렵다. 무대는 순간을 만들지만, 도시는 반복을 만든다. 반복이 쌓여야 서사가 되고, 서사가 있어야 기억이 남는다.
K-헤리티지가 힘을 가지려면 무대가 아니라 도시가 플랫폼이 돼야 한다. 전통은 특정 행사장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건축과 상점의 디자인, 학교 교육과 지역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호출돼야 한다. 전통이 일상의 배경이 될 때, 그것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강력한 문화 자산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물관과 유적만이 아니라, 거리의 생활 방식과 공간의 질서가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문화는 단일 콘텐츠가 아니라 도시 전체에 축적된 이야기다. 한국 역시 궁궐과 한옥, 시장과 골목, 현대적 건축과 디지털 인프라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 요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BTS가 보여준 것은 전통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전통을 현재의 리듬 속에 배치하는 감각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도시가 그 리듬을 이어받아야 한다. 공연장 밖에서도 한국 사회의 태도와 감정 구조가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한다. 친절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현대적이되 뿌리를 잃지 않은 공간 감각이 필요하다.
도시는 가장 강력한 문화 콘텐츠다. 관광객은 공연 한 편을 보고 돌아가지만, 도시에서의 경험은 훨씬 오래 남는다. 교통 체계, 공공 디자인, 안내 표지, 상점의 언어, 시민의 태도까지 모두가 하나의 메시지를 구성한다. 이 메시지가 일관될 때 K-헤리티지는 이벤트를 넘어 구조가 된다.
우리는 여전히 전통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지게 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옥이 사진 촬영지가 아니라 생활 공간이 되고, 전통 음악이 축제 무대가 아니라 일상 속 배경이 될 때, 도시는 비로소 문화가 된다. K-헤리티지는 과거를 전시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재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 전환은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도시계획과 교육, 산업과 관광이 함께 연결돼야 한다. 전통은 단일 부처의 과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무대는 문화의 시작일 수 있지만, 도시는 문화의 지속 조건이다.
BTS의 ‘아리랑’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문 안을 채울 차례다. 무대 위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도시 전체가 같은 리듬으로 숨 쉴 수 있는가. K-헤리티지가 이벤트가 아니라 환경이 될 수 있는가.
문화는 한 장면으로 남지 않는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반복될 때, 그것은 비로소 문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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