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40년에 한 번 올 메모리 호황, 이대로 흘려보낼 것인가

“4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공급 부족.” 

반도체 분석기관 세미애널리시스 (SemiAnalysis)의 이 평가는 지금 메모리 시장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미세화 한계로 공급 확대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인공지능 서버 확산으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단순한 경기 반등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는 전환기다. 최근 가격 급등에도 “아직 정점이 아니다”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역사적 호황의 중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두 기업은 나란히 ‘분기 영업이익 30조원’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JP모건은 메모리 가격 급등과 공급자 우위 구조를 근거로 실적 전망을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를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선입금 경쟁은 시장 주도권이 완전히 한국 기업 쪽으로 넘어왔음을 보여준다. 

이 정도면 국가 경제가 함께 도약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0.276%로 주요국 하위권에 머물렀다. 연간 성장률도 1%를 넘지 못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쌓고 있는데, 국민경제는 사실상 정체 상태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다. 성장 동력이 일부 대기업에만 갇혀 있는 구조적 병폐다. 반도체 호황이 고용과 내수, 중소기업, 생산성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현실은 한국 경제의 취약한 체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호황이 있어도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 이것이 지금 한국의 민낯이다. 

같은 반도체 수혜국인 대만과 비교하면 한국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진다. 대만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8.6%에 달하며 15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인공지능 서버와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전체 수출은 35% 늘었고, 미국으로의 출하 물량은 78%나 급증했다. 

대만 경제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수출·고용이 동시에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경쟁력을 갖고도 그 성과를 국가 성장으로 연결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이번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기술 발전이 곧 공급 확대와 가격 안정으로 이어졌다. 메모리 (D램) 전성기에는 10년 동안 집적도가 약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세미애널리시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D램 집적도 증가는 약 2배 수준에 그쳤다. 미세화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이다.  

보고서는 “D램 스케일링의 붕괴는 비용, 구조,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기술 진보만으로 공급을 빠르게 늘릴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최신 D램 셀은 극도로 얇고 높은 3차원 구조다. 저장되는 전자 수는 수만 개에 불과하다. 공정이 더 미세해질수록 신호는 약해지고, 제조 편차나 온도 변화에도 민감해진다. 

이 때문에 과거처럼 공정 전환만으로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이 가격을 자연스럽게 눌러주는 구조가 약화되면서, 수급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은 구조적으로 묶여 있고, 인공지능 수요는 계속 폭증하고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는 인공지능 경쟁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이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이클은 영원하지 않다. 다음 균형 조정 국면이 오면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호황은 어쩌면 마지막 구조적 기회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산업 정책은 세제 혜택과 부지 제공, 규제 완화가 전부다. 이것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을 이길 수 없다. 

현재의 경쟁은 소재·장비·설계·패키징·소프트웨어·데이터·인력·금융이 하나로 묶인 전면전이다. 이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잘해도 국가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인재 육성, 연구개발 강화, 산업 생태계 구축은 수년째 반복되는 구호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학은 따로 놀고, 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며, 중소기업은 기술과 자금 부족에 허덕인다. 

글로벌 관세 리스크와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불안까지 겹친 상황에서, 산업·통상·외교·교육 정책이 따로 움직이는 구조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문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반도체 인력 양성 실습 현장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인력 양성 실습 현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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