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직 사회에서 이 말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다. 직함은 예의가 아니라 권력이다. 결재선의 순서이고, 발언권의 크기이며,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패다. 그 직함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선언은, 조직 질서 자체를 흔드는 행위에 가깝다.
‘님’이라는 호칭은 지난해 말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과기정통부 사후 브리핑에서 처음 알려졌다. 대변인은 부총리 비서실장조차 “경훈 님”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이후 이 표현은 곧 ‘경훈 님의 일하는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출발점은 명확하다. 창의성은 자유로운 소통에서 나오고, 자유로운 소통은 위계가 낮을수록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말에 벽이 있으면 생각도 막힌다. 호칭에 계급이 묻어나면, 의견도 자동으로 필터링된다.
그래서 말부터 바꿨다. 이 변화는 문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기부는 동시에 행정 시스템도 공개형으로 전환하고 있다. 업무보고 생중계, 산하기관 계획 공개, R&D 예산 노출이 대표적이다. 23조 원이 넘는 연구개발 예산의 사용처가 국민 앞에 펼쳐진다.
이제 정책은 내부 문서가 아니라 공개 기록이 된다. 숨길 공간은 줄고, 책임은 커진다. “나중에 설명하겠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정책 우선순위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밀고 무엇을 접는지가 화면으로 검증된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도 실무 계획으로 평가받는다.
권한은 여전히 위에 있지만, 정당성은 공개를 통해 확보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님’ 실험은 의미를 갖는다. 위계를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책임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현장 반응은 엇갈린다.
한 과장은 “조직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말한다.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직급 중심 관계에서 사람 중심 관계로 이동하는 신호다. 그러나 국장은 “아직 어색하다”고 말한다. 수십 년간 축적된 위계 언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는 바뀌어도, 사고방식은 남는다. 한 실장은 “존중과 신뢰가 효율을 만든다는 게 부총리의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퇴근 후 연락 자제, 직접 소통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권위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신뢰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려는 시도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구조적 변화로 본다.
국민대 조경호 교수는 “호칭 개혁은 현장 중심 행정으로 가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한다. 위계 중심 행정에서 문제 해결 중심 행정으로 이동하려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연세대 유상엽 교수의 지적처럼, 주의할 지점도 분명하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 직급은 전문성을 상징한다. ‘님’이 권위주의를 약화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전문성과 책임까지 흐려지면 조직은 혼란에 빠진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호칭은 바꿀 수 있어도, 평가와 책임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결정은 위에서 하고, 부담은 아래로 내려오는 구조가 유지된다면, 조직은 결코 과감해질 수 없다. 수평적 언어와 수직적 책임이 공존하는 조직은 내부적으로 분열된다. 겉은 부드럽고, 속은 경직된다.
과기부가 동시에 생중계와 공개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만 바꾸면 실패한다는 판단이다. 구조까지 함께 바꾸지 않으면 ‘님’은 장식이 된다.
관료제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진적 실험은 늘 위험하다. 그러나 변화 없는 안정은 곧 정체다. 과기부는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이 실험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호칭에 달려 있지 않다.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지, 책임을 어디까지 분산하는지,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관건이다. 여기까지 바뀌지 않으면, ‘경훈 님’은 일시적 상징으로 끝난다.
그러나 여기까지 바뀐다면, 과기부는 한국 행정에서 보기 드문 사례가 될 수 있다. 위계는 유지하되, 위압은 줄이고, 권한은 남기되, 책임은 투명하게 만드는 조직.
결국 질문은 하나다.
“경훈 님”은 개인의 스타일로 남을 것인가, 제도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호칭 하나로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과기부의 실험은 지금, 권력을 언어에서 떼어낼 수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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