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 "감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VIP자산운용 사옥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VIP자산운용 사옥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지난 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증시의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주주를 설득하고 제도를 혁신하는 '우호적 행동주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최준철 공동대표와 함께 1990년대 후반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스머스(SMIC)'에서 활동하며 가치투자의 기틀을 닦은 한국 가치투자 1세대다. 2003년 자본금 10억원으로 시작한 VIP자산운용(당시 VIP투자자문)을 20여년 만에 수조원을 운용하는 명가로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날 김 대표는 취임 이후 지속해온 가치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우호적 행동주의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자사주 스와프 등 편법적 지배력 강화에 대한 경고 △5% 룰 완화 등 규제 혁신의 필요성 △대주주와 주주가 윈윈하는 승계 솔루션 등 네 가지 핵심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상법 개정의 과도기 속 정부의 구체적인 시행 가이드라인 마련이 밸류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가치투자 명가였던 VIP자산운용이 언제부턴가 행동주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한국에서 '기다리는 가치투자'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건가?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5년, 10년을 기다려도 회사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국 증시는 대주주가 주가를 올릴 동기가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상속세나 증여세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객의 수수료를 받는 액티브 매니저다. 단순히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는 달라야 한다. 촉매를 직접 만들어 재평가를 끌어내는 것이 우리가 받은 수수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적극적 노력이 성과도 더 좋았다.
 
VIP자산운용의 행동주의는 '우호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액션은 어떻게 이뤄지나?
우리는 공시한 종목이 30개가 넘지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건 10~20%도 안 된다. 대부분은 대주주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면 아래서 설득한다. 다만 가끔 평균치에서 심하게 벗어나는 '아웃라이어' 행동을 하는 회사들이 있다. 롯데렌탈이나 HL홀딩스처럼, 바뀌지 않으면 피해가 비가역적인 경우다. 예를 들어 유상증자로 지분 가치를 희석하거나 자사주를 임의로 처분하는 식이다. 이런 건 막을 방법이 없기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최근 자사주 활용 방식을 두고 강하게 비판했는데, 어떤 지점이 문제인가?
최근 우리가 투자한 세보엠이씨 같은 회사가 전형적이다. 주주 친화 목적으로 샀다는 자사주를 일방적으로 우호 법인과 스와프(교환)해버렸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의결권을 되살린 거다. 일본은 상호 보유주를 폐지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는 역행하고 있다. 조만간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될 것 같으니, 그전에 법의 테두리를 이용해 제도적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변칙적 운용'이다. 주주들에게 일말의 설명도 없이 소통을 끊어버리는 이런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
 
상법 개정(이사의 충실 의무)이 논의 중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이사들이 예전보다 훨씬 긴장하고 소통에 열려 있는 자세인 건 맞다. 본인들의 소송 리스크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딜레마가 있다. '충실 의무'라는 문구는 들어갔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위반인지 가이드라인이 없다. 시행령 등으로 '이런 자사주 스와프는 위반이다'라는 명확한 룰이 세팅되지 않으면 이사들은 여전히 전략적 제휴라는 핑계 뒤에 숨어 거수기 노릇을 할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법적 제약 때문에 못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당국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주주들이 모여 배당이나 주주 환원을 논의하려고 하면 '공동 보유(5% 룰)' 위반 가능성이 발목을 잡는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서로 소통만 해도 '한 팀'으로 묶일 위험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지분 변동 시마다 보고 의무가 생길 뿐 아니라 경영권 개입 오해를 사 법적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숙제하라고 하면서 공부는 혼자 하라는 꼴이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경영권 탈취 목적이 아닌 일반적 주주권 행사에 대해서는 주주 간 교류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예외 조항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짜 행동주의가 살아난다.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제척 의무'가 필요하다. 본인의 급여나 본인에게 유리한 안건에 대해서는 이사회나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과반 지분을 가졌다는 이유로 본인에게 유익한 결정을 마음대로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양심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기업에 보내는 제안서를 '러브레터'라 표현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나?
단순히 '돈 내놔라'가 아니다. 회계사, 컨설턴트로 구성된 내부 밸류업 팀이 30~60페이지짜리 리포트를 쓴다. 승계 구조 개선, 자산 매각 전략, 심지어 공장 입지까지 제안한다. 대주주가 태어나서 상장사 오너가 처음이라 모를 수 있는 부분들을 우리가 컨설팅해 주는 거다. 대주주와 주주의 교집합을 찾아 "이렇게 하면 당신도 좋고 우리도 좋다"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만드는 것이 우리 방식이다.
 
'대주주 위독설'을 언급하며 승계 플랜까지 제안한다고 들었다.
한국 저평가 종목의 최대 호재가 '대주주 사망'이라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대주주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증시의 비극을 끝내야 한다. 우리는 대주주에게 조기 증여를 제안한다. 미리 지분을 넘기고 주가 누르기를 멈춘 뒤 밸류업을 해서 주가를 올리라는 거다. 그럼 대주주는 높은 주가로 형성된 배당금으로 증여세를 낼 수 있고 주주는 주가 상승 혜택을 본다. 게시판에서 죽으라는 저주 대신 경영 잘해줘서 고맙다는 덕담이 오가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
 
기업을 고를 때 '재무제표 나이테'를 본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
1년 치 카드 내역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듯, 10년 치 재무제표를 보면 회사가 돈을 어떻게 벌고 썼는지 다 나온다. 그리고 CEO를 인터뷰한 뒤 1~3년 정도 지켜본다. 말한 대로 지키는지, 역량과 도덕성이 있는지 검증한다. 그 허들을 넘으면 비중을 실어 투자한다.
 
최근 소액주주 플랫폼 등 개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주 바람직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주주가 주장하지 않으면 회사는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앞으로도 기업과 적이 아닌 파트너로서, 때로는 의사나 과외 선생님처럼 쓴소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샀다 팔았다 하는 매매가 아니라, 기업과 함께 호흡하며 가치를 키우는 것이 진짜 액티브 투자의 재미이자 보람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