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북부에 자리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축구의 언어로 설계된 공간이다. 이곳의 시간은 프리미어리그 일정에 맞춰 흐르고, 관중의 호흡은 경기의 리듬에 따라 고조돼 왔다. 그런데 이 경기장에,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한 두 개의 한국 이름이 같은 방식으로 각인됐다. 손흥민, 그리고 방탄소년단(BTS)이다.
손흥민이 이 스타디움에서 이룬 성취는 단순한 득점 기록의 축적이 아니다. 그는 빠른 스프린트와 결정력이라는 개인 기량을 넘어, 토트넘의 전술 구조 안에서 경기의 결을 바꾸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상대 수비 라인을 끌어내는 침투, 동료의 움직임을 살리는 패스 선택, 흐름이 막힐 때 한 번에 균열을 내는 슈팅이 반복됐다. 이런 장면들이 쌓이며 그는 ‘결정적 순간을 맡길 수 있는 선수’가 됐다. 주장 완장을 찬 이후에는 그 책임이 더욱 분명해졌다. 위기 국면에서 팀을 끌어올리고, 경기장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손흥민에게 모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반복이 곧
증명이었다.
이 점유의 방식은 BTS가 런던에서 보여준 장면과 정확히 겹친다. BTS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공연은 예매 개시와 함께 이틀 전석이 매진됐다. 이 ‘전석 매진’이라는 팩트는 흥행 성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통상 대중음악 공연에서는 시야 제한을 이유로 경기장의 상당 부분을 비워두지만, BTS는 그 전제를 바꿨다. 공연장 중앙에 무대를 두고, 관객석을 360도로 개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시야 제한석을 최소화해 구장을 꽉 채우는 이 설계는 관객 동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매진이라는 결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손흥민이 출전 시간이나 개인 기록을 늘리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증명하지 않았듯, BTS 역시 ‘얼마나 팔렸는가’를 앞세우지 않았다. 대신 공간의 사용법을 바꾸는 선택으로, 자신들이 이미 중심에 서 있음을 보여줬다. 축구에서 전술의 축은 누구에게나 맡겨지지 않는다. 공연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 설계는 아티스트의 위상과 신뢰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다.
이 장면은 한국 문화와 인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왜 대단한지”를 설명해야 했다. 국적이 강조됐고, 이력이 덧붙여졌으며, 문화적 배경에 대한 해설이 따라붙었다. 지금은 다르다. 손흥민은 더 이상 ‘아시아 선수’라는 수식어로 불리지 않는다. BTS 역시 K팝이라는 장르 설명 없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에서 설계를 바꾼다. 설명의 시대를 지나, 설계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신뢰의 축적이 있다. 손흥민은 한두 번의 슈퍼 플레이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매 시즌 반복된 활약, 큰 경기에서의 책임감, 팀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쌓여 신뢰가 됐다. 그 신뢰가 전술의 중심을 맡길 수 있는 권한으로 돌아왔다. BTS 역시 수년간의 월드투어와 메시지의 일관성, 팬과의 관계를 통해 신뢰를 축적해 왔다. 그 결과 공연장은 더 이상 제약의 공간이 아니라, 재설계의 대상이 됐다.
이 점에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상징적이다. 이곳은 축구와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가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 공간이다. 누가 이 무대를 ‘사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무대를 ‘바꿀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손흥민은 경기의 흐름을 바꿨고, BTS는 공연장의 구조를 바꿨다. 둘 다 공간을 점유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 점유는 개인의 영광으로 끝나지 않는다. 손흥민 이후 프리미어리그는 아시아를 단순한 중계권 시장이 아니라, 리그를 구성하는 핵심 팬층이자 인재 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BTS 이후 글로벌 음악 산업 역시 K팝을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플랫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은 것은 트로피나 차트 순위가 아니라, 공간과 시장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다.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장 한국적인 주체가, 더 이상 한국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다. 이 증명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도록, 반복 가능한 구조로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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